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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신장동의 자연마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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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장동에는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건설되기 전 구장터·목천·제역동·남산터와 같은 자연마을이 있었다.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각 지역에서 모여든 사람들이 제역동 일대와 구릉지대였던 밀월동·송월동 일대에 집단 주거지를 형성했다.


구장터125)는 19세기 후반 장터가 있던 마을이다. 주민들은 구장터가 일탄면의 중심이었다고 말한다. 구장터에 장시場市가 열렸던 것은 진위천 수로와 고덕면의 진위현 해창과 연결된 도로가 만났으며 삼남대로와도 가까웠기 때문이었다. 장시場市는 구한말 봉남리로 옮겨가면서 쇠퇴했다. 구장터는 해방 전후 50호가 안 됐다가 1952년 미군기지 건설로 폐동된 신야리와 야리 마을주민들이 옮겨오면서 55∼60호로 증가했다. 논농사를 주로 지었지만 1990년대 이후로는 진위천변을 중심으로 비닐하우스에서 시설채소 재배를 많이 했다. 하지만 활주로와 가까이 있어 비행기 이착륙에 따른 소음으로 2008년 폐동됐고 주민들은 송북동으로 집단 이거해 동안마을을 만들었다.


나무내는 목천木川이라고 쓴다. ‘나무내’는 나무가 떠내려 오는 냇가 마을이라는 뜻이다. 바닷물이 유입됐던 옛날에는 지산천으로 크고 작은 나무들이 떠내려 왔는데 땔감이 부족했던 시절 이것을 땔감으로 사용했다. 나무내는 전주이씨가 많다. 일제강점기만 해도 마을규모는 매우 작았고 지금도 원주민들은 많지 않다.


남산터126)는 해방 전후 15호 내외의 작은 마을이었다. 마을은 안동네와 바깥동네로 구분됐다. 미군기지와 관련된 사람들이 일부 이주하면서 인구밀집지역이 됐다. 남산 일대의 야산은 강릉최씨의 땅이었고, 마을 앞 논밭은 광주이씨가 소유했다. 미군기지가 주둔하면서 많은 토지가 수용됐다. 남산터 뒤의 남산 기슭에는 16세기 사림파 학자 조광조, 김정과 교분이 있던 원정 최수성의 묘가 있었다. 하지만 최수성의 묘도 미군기지 확장에 따라 1970년대 후반 초 강릉으로 이장했다.


신장1동 제역동은 조선시대에 국가에서 역을 면제해주는 대신 문정공 최수성의 묘와 사당을 관리하게 했던 마을이다. 최수성은 신사무옥(1521, 중종16)으로 무고하게 처형됐으나 영의정에 추증됐고 주변 10리 백성들의 역을 면제한 뒤 묘를 관리하고 제를 올리게 했다.


한적한 농촌마을이던 제역동은 1952년 미군기지가 건설되면서 각종 상가와 술집, 호텔이 밀집한 번화가가 됐다.


신장2동 송월동과 밀월동은 1952년 K-55 미공군기지가 건설되면서 새로 조성된 마을이다. 주민들은 전쟁 피란민, 전국 각 지역에서 일자리를 찾아 올라온 사람들, 미군 관련 사업에 종사하는 사람들이었다. 몰려든 사람들이 밀월동과 송월동 언덕배기에 토굴이나 판자집을 짓고 살았다. 그 뒤 도시가 확장되면서 송월동·밀월동 지역까지 여관과 상가들이 들어섰으며, 1970년대 말에는 철도건널목이 있던 곳 남쪽에 신장육교가 생기면서 도시화가 더욱 촉진됐다. 중앙국제시장과 태광중·고등학교, 송신초등학교 같은 교육시설, 각종 종교시설이 들어선 것도 1960∼70년대다. 현재 송월동과 밀월동 일부지역은 재개발을 앞두고 있다.


신장동 최고 호황기는 1960∼70년대였다. 미군들이 소비하는 달러는 위력이 강했다. 신장동 기지촌이 먹고, 즐기고, 쇼핑하기 좋은 곳으로 소문나면서 오키나와와 필리핀에 주둔하는 미군들까지 전세기를 타고 몰려들었다. 요즘 상황은 예전만 못하다. 경제가 발전하면서 달러와 미제물건의 위력이 크게약화됐고, 미군이 감축되고 김대중 정부 때 무료항공편이 중단된 것, 그리고 9·11테러로 미군들의 외출 제한이 많아졌기 때문이다. 1995년 전후부터는 쇼핑몰을 조성하고 관광객 유치를 위해 노력하고 있다.



미군기지확장으로 폐동되기 전의 신장1동 구장터(2007)

| 미군기지확장으로 폐동되기 전의 신장1동 구장터(2007) |



베타탄약고가 있던 송탄국제교류센터에서 열린 한미친선문화축제(2010)

| 베타탄약고가 있던 송탄국제교류센터에서 열린 한미친선문화축제(2010) |



미군기지 확장으로 폐동된 신장1동 구장터(2013)

| 미군기지 확장으로 폐동된 신장1동 구장터(2013) |



주석

125) 박은석(73세), 박길영(57세), 안병호(53세), 2007년 4월 9일 마을회관 앞에서 인터뷰
126) 이용태(91세), 이종현(75세), 2009년 7월 28일 신장동 남산터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