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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 영신현(오타, 영풍이라고도 함)으로 수주水州(수원지역)의 영현이었다. 조선 1433년(세종 15) 수원부의 속현이었던 영신현을 진위현으로 통합하는 과정에서 일부 지역이 진위현에 속하게 됐고, 종덕면(현 당현리·두릉리·문곡리·동청리 일대)과 오타면(현 궁리 및 해창리·방축리 일부지역)은 수원도호부에 편입됐다. 1895년∼1896년 행정구역개편으로 진위군 고두면과 소고니면 일부·수원군 종덕면·오타면으로 통합됐다가, 1914년 고두면의 ‘고’와 종덕면의 ‘덕’에서 한 글자씩 차용해 ‘고덕면’이라고 했다.


고덕면의 면적은 35.09㎢으로 평택시 전체 면적의 7.7% 이다. 법정리는 11개이며, 행정리가 43개리 144개 반이다. 교육기관은 초등학교 3개교, 고등학교는 1개교가 있다. 초등학교 가운데 가장 오래된 학교는 고덕면 해창리의 고덕초등학교로 1931년 11월에 개교했다. 그밖에도 1955년 4월 개교한 종덕초등학교, 1948년 고덕초등학교 효덕분교로 개교했다가 1954년 정식 개교한 효덕초등학교가 있다. 본래 성지중학교로 개교했다가 현재 특수목적고로 성장한 한국관광고등학교도 있다. 한국관광고등학교는 1962년 고덕면 두릉리에 은실농예학원으로 문을 열었다. 이듬해 은실농업기술학교로 개교했고, 1967년에 은실중학교가 됐다. 1971년 성지중학교로 교명을 바꿨으나 농촌인구 감소로 학교가 폐교위기 상황에서 1999년 9월 한국관광고등학교로 전환했다.


근대이전 고덕면의 인구는 정확한 통계자료가 없어 알 수가 없다. 다만 1899년 『진위현 읍지』 기록에 고두면 민호民戶가 294호라는 것을 보아 오타면과 종덕면도 비슷한 인구였을 것으로 보인다. 1965∼1975년 사이     『평택시통계연보』63)에 따르면 고덕면의 농가農家는 1965년에 약 1,400호였다가 1975년에 약 1,600호로 증가했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뒤의 간척으로 일정 수준의 인구증가가 있었음을 확인할 수 있다. 1975년부터는 농업인구의 감소와 비농업인구의 증가가 뚜렷했다. 1990년대 중반에는 전체 2,674호 가운데 1,289호가 비농업인구로 바뀌었다. 2012년 6월 말 현재 고덕면은 6,033세대, 15,835명이다. 남자는 8,167명이고, 여자는 7,668명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 인구가 조금 더 많다.


근대 이전 고덕면은 육로교통보다 수로교통이 발달했다. 육로교통은 진위현의 읍치였던 진위면 봉남리에서 봉남교와 신장동을 거쳐 고덕면 해창리로 이어지는 도로가 가장 중요했다. 당현리와 두릉리를 거쳐 동청리의 동청포를 거쳐 청북면으로 건너가는 교통로와, 서탄면 장등리·금각리를 거쳐 황구지리의 항곶포를 통해 화성시 양감면으로 건너하는 교통로도 있었다. 수로교통은 고덕면 동고1리의 이포·궁리의 다라고비진·해창리의 해창포·동청리의 동청포가 중요했다. 근대 이후 국도 38호선이 가설되고 다라고비진에 궁안교가 가설되면서 수로이용이 점차 줄었다. 현재 고덕면에는 동서고속국도가 해창리를 지나고, 동고리와 궁리를 지나는 국도 38호선(서동대로)과, 동고리에서 연결되는 국도 45호선, 안성시 원곡면에서 송탄을 거쳐 청북면으로 연결된 302지방도가 지나고 있다.


조선시대 고덕면은 안성천, 진위천변을 중심으로 궁방전과 역둔토가 많았으며, 해창리에는 진위현의 해창海倉이 고덕면 해창3리 창말에 있었다. 해창3리는 진위천 하류에 위치해 바닷물이 드나드는 포구가 발달했다. 포구에 조창이 설치되면서 ‘해창포’라고 불렀다. 해창포의 조세운송 책임은 진위현감이 맡았다. 진위현감은 세곡 500석 이상을 선적할 수 있는 조운선을 준비하고, 인근 백성들을 조군漕軍으로 선발해 한양의 용산창이나 마포까지 운반했다. 해창포는 1894년 갑오개혁으로 기능이 중단됐지만 ‘해창리’라는 지명은 남아있다.


궁방전과 역둔토는 궁리·방축리·동고리 일대에 많았다. 궁방전의 흔적은 ‘궁리宮里’, ‘궁논’, ‘건궁리’와 같은 지명으로 알 수 있으며 둔전屯田은 동고리의 옛 지명으로 조선후기 5군영의 하나였던 수어청의 둔답이 있었던 ‘수어창리’라는 지명에서 확인된다. 일제강점기 궁리와 동고리 일대에는 가등농장이 있었다. 가등농장은 5백여 만평의 국유미간지를 간척해 농장을 만들고 궁안교 입구에 사무실을 두고 농장을 경영했다. 일제강점기 총독부와 일본인들에게 넘어갔던 경작지는 해방 후 적산불하정책과 농지개혁으로 농민들에게 분배됐다. 현재 고덕면은 평택지역 전체 미곡생산량의 10%를 생산하고 있다. 상공업은 미미했지만 1990년대를 전후해 해창리의 신풍제지를 비롯한 130여개 공장들이 가동 중이다. 상업은 고덕면 좌교리와 궁리를 중심으로 일부 발달했으나 규모면에서 약한 편이다.


2013년 현재 고덕면은 큰 변화에 직면했다. 2005년 고덕면 궁리에서 좌교리·해창리 일부·율포리·두릉리·여염리 지역이 고덕국제신도시 개발예정지로 지정돼 일부공사 중이고 2013년 5월부터 고덕면 여염리와 장당동 광천마을 사이에 삼성전자 평택사업장의 기반공사가 시작됐다. 여염리와 장당동 광천마을은 폐동廢洞됐고 주민들은 주변지역으로 뿔뿔이 흩어졌다. 고덕국제신도시개발이 진행되는 과정에서 마을들이 폐동되고 고덕면의 중심에는 거대한 신도시가 만들어질 것이다. 도시와 경관의 변화는 새로운 삶의 양식을 요구할 것이며, 수백 년 마을을 일구며 살아온 주민들은 고향에서 밀려나 흩어질 것다.



고덕면의 행정중심 고덕면사무소(2013)

| 고덕면의 행정중심 고덕면사무소(2013) |



주석

63) 평택시 통계연보, 1965, 1970, 197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