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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아동생활시설의 발전과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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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에서 최초로 아동시설을 설립한 곳은 천혜보육원이다. 1950년 한국전쟁 중 당시 대한부인회 평택군지부장으로 활동하던 이귀임 씨가 전쟁으로 인해 발생한 고아·노인·미 혼모들이 보호받지 못하는 것을 안타깝게 여겨 평택읍 평택 6리에 땅을 파고 토굴을 만들어 30여 명을 데리고 살기 시작했다.
이어 성육보육원과 애향아동복지센터(구 애향보육원)가 설립됐다. 엔젤라고아원, 김형순고아원, 에덴육아원, 어린이동산 등이 차례로 설립됐고 차별화된 아동복지를 실천했던 오 산소년촌고아원도 있었다.
성육보육원은 1952년 지역사회 여성 지도자로 활약하고 있던 김계선 씨가 시작했다. 송탄면 서정리에 있는 동생 김계남 씨의 집을 빌려 전쟁 고아와 기아들을 하나둘씩 보살피면 서 30여 명의 대가족이 됐다.



| 1950년대 설립초기 성육보육원 |


| 1960년대 성육보육원 |



애향보육원은 1953년 유연흥 씨가 고아들을 위해 사비를 털어 구제 사업을 시작했다. 꽃동산애육원(김형순고아원)은 재미교포인 김형순 씨가 1958년 진위면 하북리에 토지 7,000평을 구입해 고아원을 세웠으며 이용복 씨가 경영했다. 엔젤라고아원은 1964년 설립돼 1980년 초 엔젤라유아원으로 명칭을 바꾸어 탁아시설로 전환했고 아동들은 인근 보육원으로 전원조치 했다. 에덴육아원은 팽성읍에서 정수영 씨가 75명의 아동들을 수용하고 있었다. 사회복지법인 어린이동산보육원은 1964년 미국인 선교사에 의해 팽성읍에 설립됐으며, 선교사가 미국으로 돌아가면서 당시 이사로 있었던 최성창 씨가 에바다복지회의 전신이 되는 시설을 운영하게 됐다.
오산소년촌고아원23)은 고덕면 당현리에 위치했으며 1960년 K-55 미공군기지 소속 군인 린포드. D. 죤스 병장이 시작해 동료, 소속부대 및 한미재단의 적극적인 후원으로 77명 고아들의 자활터전이 됐다.
동방사회복지회는 1980년대에 평택 동방어린이동산을 준공하고 1985년 5월 같은 동산 내 120명 정원의 아동복지시설(영아시설인 야곱의 집)을 개원했다.
설립 시부터 가족체제로 이어오던 성육보육원은 1980년 목회와 간질사업에 주력하던 유재춘 목사가 인수운영하게 됐다. 애향아동복지센터(구 애향보육원)는 초대 설립자인 유연흥 씨가 1988년까지 운영했으며 2대 원장으로 김용숙 씨가 활동했다. 천혜보육원의 이귀임 원장은 지역사회 여성 지도자로서 시설아동들을 위한 공로로 제1회 사회복지대상 및 국민훈장모란장을 수상하기도 했으며, 1990년 숙환으로 사망해 제2대 원장으로 진연숙 씨가 취임했다.

 



| 애향보육원 전경 |


| 야곱의 집 전경 |



2000년대 평택시의 아동복지시설은 각 시설별로 다양한 변화가 있었다. 정부의 아동시설 발전 및 전문화를 위한 전국아동복지시설 평가에 따라 평택시 아동복지시설 4개소가 우수시설로 평가를 받았다.
2013년 천혜보육원은 법인 노인시설로 전환됨에 따라 보육원 아동들에 대한 폐원 준비작업 중이다.



주석

23) 오산소년촌고아원은 평택시 고덕면 당현리에 소재지를 두었으나 평택시 관할이 아니었다. (당시 평택시 공무원 인터뷰 중 확인) 타 보육원과는 차별화된 미군에 의해 직접 지원·운영되는 복지서비스가 제공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