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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원부水原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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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법정지명


조선시대 수원부 지역 중 지금 평택지역으로 조정된 곳은 1914년 당시 옛 수원군 숙성면宿城面·오정면吾井面·현암면玄岩面·토진면土津面·가사면佳士面 등과 최근 흡수된 양감면楊甘面(수원楊干面) 고렴리古念里 등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수원부에 속했던 지역의 현재 지명]22)


구분 현재 법정 지명
평택지역 신대동 일부, 지제동 일부(오타면 지역)
고덕면 궁리 일부, 해창리 일부
오성면 교포리 일부, 길음리 일부, 당거리, 숙성리, 신리, 안화리, 양교리, 죽리, 창내리
청북면 백봉리, 어소리, 어연리, 토진리, 한산리, 현곡리
포승면 홍원리, 도곡리, 희곡리 일부, 방림리 일부
현덕면 권관리, 기산리, 덕목리 일부, 방축리, 인광리 일부, 화양리
안중면 금곡리, 대반리 일부, 삼정리 일부, 안중리 일부, 학현리 일부
양감면(화성군) 고렴리


행정구역의 변천


수원부는 본래 백제의23) 매홀현買忽縣이었다. 통일신라 757년(경덕왕 16) 수성군水城郡으로 바꾸고 한주漢州에 속했다. 영현領縣은 진위振威·차성車城(또는 거성)·영풍永豐·광덕廣德 등이었다. 822년(헌덕왕 14) 당은현唐恩縣을 합병했다가 829년(흥덕왕 4) 본래대로 환원됐다.
940년(고려 23) 수주水州로 승격됐고 995년(성종 14) 도단련사都團練使를 두었다가 1007년(목종 8) 폐지됐다. 1018년(현종 9) 지수주사知水州事를 두었고 속현은 진위·안산安山·용성龍城·정송貞松·쌍부雙阜·양성陽城·영신永新·광덕廣德 등이었다.
1271년(원종 12) 몽고군이 대부도에 침략할 때 주관州官 안열安悅이 이를 평정한 공으로 수원도호부水原都護府로 승격됐다. 1308년(충렬왕 34) 수주목水州牧으로 승격시켰다가 1310년(충선왕 2) 목을 없애면서 수원부水原府로 강등됐다. 1362년(공민왕 11) 홍건적이 침입할 때 이를 잘 막지 못해 수원군으로 강등됐다가 1366년(공민왕 15) 김용金鏞의 후원으로 다시 부로 승격됐다.
조선 개국 당시에는 고려의 행정구역을 그대로 따랐으며 1398년(태조 7) 양성현에 속한 포내미부곡·신영장新永莊 등의 지세가 마치 ‘개의 이빨’24)모양으로 돼 있어 수원부에 속하게 했다. 1413년(태종 13) 수원도호부가 됐고, 인천의 양간처楊干處와 양성의 종덕장宗德莊을 내속했다.
1466년(세조 12) 진을 두었고 부평도호부·남양도호부·인천도호부·안산군·안성군·진위현·양천현·용인현·금천현·양성현·통진현·김포현 등을 관할했다. 『경국대전』에 종3품 도호부사都護府使를 두었는데, 병마첨절제사兵馬僉節制使를 겸했으며 마을 규모가 커 종5품 판관判官을 하나 더 두었다고 한다.
1526년(중종 21) 고을에서 부모시해사건이 생겨 군으로 강등됐고 종4품 군수를 두었으며, 진은 인천으로 옮겼다가 1535년(중종 30)에 복구했다. 1602년(선조 35) 방어사防禦使를 겸했으며, 1668년(현종 9) 다시 별중영장別中營將을 겸했다. 1687년(숙종 13) 고쳐서 총융좌영장摠戎左營將을 겸하게 했고, 1786년(정조 10) 사도세자의 무덤인 현륭원顯隆園이 옛 읍치邑治(관아의 소재지)로 결정되자 읍치를 팔달산 동쪽으로 옮기면서 광주의 일용日用·송동松洞 등 2개 면을 내속했다. 1792년 진을 남양으로 옮겼고, 다음해 유수부留守府로 승격돼 4유수부의 하나가 됐다. 별호는 한남漢南이며 수성隋城 또는 화성華城이라고도 했다.
조선후기 수원부에는 안녕면安寧面·남곡면南谷面·정송면貞松面·모지면茅旨面·삼봉면三峯面·호매절어량천면好梅折於良川面·용복면龍伏面·고등촌면古等村面·공석면空石面·광교면光敎面·장족면長足面·산창에 속한 산성면山倉屬山城面·초평면草坪面·청호면靑好面·삼며곡면三旀谷面·정림면正林面·어탄면魚呑面·동북면東北面·태촌면苔村面·사창에 속한 쟁홀면社倉屬爭忽面·동면東面·양간면楊干面·금물촌면今勿村面·종덕면宗德面·오타면吾朶面·토법면土法面·북방면北方面·설창에 속한 청룡면設倉屬靑龍面·숙성면宿城面·오정면梧井面·감암면甘巖面·광덕면廣德面·포내면浦內面·가사곶면 삼도佳士串面三島·해창에 속한 공이향면海倉屬工以鄕面·서북면西北面·모전면茅田面·팔탄면八灘面·가질등면加叱等面·쌍창에 속한 화방면雙倉屬禾方面·수류면水流面·마정면 풍도馬井面楓島·초장면草長面·사정면奢井面·팔라곶면八羅串面·압장면鴨長面 등이 있었다.
1895년(고종 32) 지방행정제도 개편 때 수원군이 되어 인천부에 속했다. 1896년 1월 13도제로 바뀌면서 경기도에 속하고, 경기도 관찰사를 두었다.



주석

22) 용성현·광덕현·종덕장·오타장·포내미부곡 지역 제외.
23) 『世宗實錄地理志』에는 고구려.
24) 개 이빨처럼 서로 나오고 들어가는 운운: 견아상입지(犬牙相入地)를 말한다. 본래 행정구역의 경계가 들쑥날쑥 서로 얽혀서 개의 송곳니처럼 불쑥 튀어나온 형상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예를 들어 ‘갑’ 고을의 땅이 ‘을’ 고을로 좁고 깊게 파고 들어와 있고, 반대로 ‘을’ 고을의 땅 역시 ‘갑’ 고을로 깊숙이 들어가 양 고을의 경계가 마치 톱니 같은 모양을 하게 되는 것을 말한다. 각 고을의 이해관계에 따라 행정에 불합리한 점이 많아 조선 초기에 시정하기 위한 노력이 진행됐으나 지역의 이해관계에 따른 토호들의 반대로 쉽게 이행되지 않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