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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직산현稷山縣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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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법정지명


평택시의 서남부와 남부 일부지역에 있었던 직산현은 1896년 지방제도 개편 때 일부가 수원부로 편입됐다. 조선시대 직산현은 1914년 당시 수원군 안외면安外面(직산현 안중면과 외야곶면의 통합지역)과 언북면堰北面(직산현 언리면과 평택현 소북면의 통합 지역)의 서 남지역 등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직산현에 속하는 현재 지명(경양현 지역 제외)]


구분 현재 법정 지명
팽성읍 노와리
오성면 길음리 일부
포승면 내기리, 만호리, 신영리 각 일부
현덕면 덕목리 일부, 인광리 일부, 황산리 일부
안중면 대반리 일부, 삼정리 일부, 성해리 일부, 송담리 일부, 안중리 일부


행정구역의 변천


직산현은 본래 위례성慰禮城이다. 백제 시조 온조왕이 도읍을 만들고 나라를 세웠으나 고구려가 차지해 사산현蛇山縣으로 고쳤고, 신라통일 이후 757년(경덕왕 16) 백성군白城郡의 영현으로 삼았다. 고려 940년(태조 23) 직산현으로 고치고 1018년(현종 9) 천안현의 속현으로 삼았고 나중에 감무를 파견했다.
조선시대 1393년(태조 2) 지군사知郡事로 승격됐고 1396년(태조 5) 경양현慶陽縣을 경양장慶陽庄으로 바꾸어 직산군에 예속시켰다.30) 1401년(태종 1) 다시 직산현으로 강등돼 감무監務를 두고 1413년(태조 14) 현감을 두었다.
1505년(연산군 11) 6월 직산현은 평택현·진천현·아산현 등과 함께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편제돼31) 11월 경기도에 이속됐다. 1596년(선조 29) 왜구침입으로 평택현의 인구가 줄어들자 직산현에 예속시켰다가 1610년(광해군 2) 다시 평택현으로 분리됐다.
조선후기에 직산현은 동변면東邊面·서변면西邊面·일동면一東面·이동면二東面·삼동면三東面·일남면一南面·이남면二南面·일서면一西面·이서二西面·삼서면三西面·일북면一北面·이북면二北面·경양면慶陽面·언리면堰里面·외야곶면外也串面 등으로 편제됐으며, 이중 경양면·언리면·외야곶면 지역이 현재의 평택지역에 해당된다. 1895년 지방제도 개편으로 잠시 공주부 직산군에 속했다가32) 1896년 13도제로 개편될 때 충청남도에 속하게 됐다. 이후 언리면·안중면·외야곶면 등의 일부가 진위군과 수원군으로 옮긴 것으로 추정된다.


1895년 23부제 실시 후 행정지역

| 1895년 23부제 실시 후 행정지역 |



주석

30) 『太祖實錄』 권10 5년 11월 2일 병진.
31) 『燕山君日記』 권58 11년 6월 29일 임오.
32) 『燕山君日記』 권60 11년 10월 14일 을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