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외적의 침입과 평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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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건국 200년이 지난 1592년, 조선은 대대적인 외침을 맞게 된다. 전국시대 일본을
통일한 도요토미 히데요시豊臣秀吉가 보낸 16만 대군이 침입했던 것이다. 임진왜란과 정유
재란을 힘겹게 견뎌낸 조선은 다시 한 번 외침을 맞는다. 왜란으로 약해진 명나라와 조선
사이에서 힘을 키워온 여진족의 청나라가 1636년 쳐들어 온 병자호란이 있었다.
양란兩亂으로 통칭되는 두 차례 전쟁은 조선 사회의 정치·경제·사회·문화의 모든 면
에 변화를 가져와 전쟁 전과는 질적으로 다른 새로운 사회가 전개됐다. 양란을 기준으로
조선사회를 조선전기와 조선후기 사회로 구분하고 있는 것도 양란의 이런 의미 때문이다.
조선시대 주요 교통로가 지나던 평택지역은 전란의 피해를 피할 수 없었던 지역이므로 양
란의 전개과정과 함께 양란이 평택을 둘러싸고는 어떻게 전개됐는지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