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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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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류는 원시 씨족사회부터 성씨를 써왔다고 추정된다. 성씨가 삼국시대에 사용했다는 기록이 있지만 후대에 소급한 것이라는 설도 있다. 고려 초기 귀족 관료계급을 중심으로 일부 성을 쓰며 성씨 앞에 본관을 표시했다. 성씨가 대부분 고려 초기 인물들을 시조로 하는 것은 고려 건국 후 왕으로부터 하사받은 것이다.


고려시대는 과거에 응시하려면 성과 본관을 써야했다. 고려 문종 9년(1055년) 응시자 성명과 본관 4대조까지 이름을 적어 봉한 후 미리 시원試院에 제출하는 봉미제도封彌制度가 있었다. 임진왜란으로 군사체제를 개편하면서 천민들까지 징발해 공을 세우면 평민으로 신분을 상승시켜 천민들도 성을 가질 수 있게 됐다. 갑오개혁으로 신분계급이 사라지면서 성의 대중화가 촉진됐고 1909년 민적법 시행이후 누구나 성을 갖게 됐다.


은 본관本貫·본향本鄕·관향貫鄕·선향先鄕 등으로도 불린다. 성이 생기기 전부터 본관이라 볼 수 있는 부족이름을 사용했다. 시조의 출생지나 정착지 등을 본으로 삼았다. 시조 발상지가 아닌 봉군封君이나 사관嗣貫으로 본관을 정하기도 했다. 후손 가운데 어느 한 파가 다른 지방으로 분가해 오래 살면서 후손들이 그 지방을 본관으로 삼은 일도 많다.


우리나라 성씨는 중국 영향을 많이 받았지만 구성과 개념은 고유한 점이 많다. 성과 본관本貫은 가문을 나타낸다. 이름은 가문의 대수代數를 나타내는 행렬行列과 개인을 구분하는 자字로 구성돼 개인구별은 물론 가문계대家門系代까지 나타난다. 한국인의 성은 남계男系 혈족을 표시하며 가족전체를 대표하는 공칭共稱이 아니라 가계 자체를 본위로 해 혼인 해도 성은 바뀌지 않는다. 가족이 사회의 근간이어서 출가하더라도 혈족 관념상 자기의 생족生族을 표시할 필요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혈통표시와 연결된 가족제도는 사회조직의기초를 이루어 사상·문화·도덕·관습의 근본이 된다.1)



주석

1) 2000년 통계청 성씨 및 본관 조사 보고서에는 한국의 성씨姓氏는 286개이고(귀화인이 창시한 귀화성씨 442개를 합하면 728개이다) 본관은 4179개다. 1985년 이후 한양강姜씨·장지김金씨·제천백白씨·강화증曾씨·태백김金씨·덕산박朴씨·하화박朴씨·웅천방方씨·한밭서徐씨·태안석石씨·홍주석昔씨·대전여呂씨·익산염廉씨·달성임林씨·달성원苑씨 등 모두 15개의 새로운 본관이 생기기도 했다. 인구별로 김해김씨 412만 5천 명이며, 밀양박씨 303만 1천 명, 전주이씨 261만 명, 경주김씨 174만 명, 경주이씨 143만 명, 경주최씨 97만 7백 명, 진주강씨 96만 7백 명, 광산김씨 83만 7천 명, 파평윤씨 71만 4천 명, 청주한씨 64만 3천 명 순이다. 본관별로는 경주慶州 본관 성씨가 87개로 482만 명이다. 진주晋州 본관 성씨 80개 137만 3천 명, 전주全州 본관 성씨 75개 321만 4천 명, 밀양密陽 본관 성씨 67개 340만 4천 명, 청주淸州 본관 성씨 66개, 해주海州 본관 성씨 62개, 충주忠州 본관 성씨 60개, 나주羅州 본관 성씨 55개, 광주光州 본관 성씨 51개, 남원南原 본관 성씨 48개, 안동安東 본관 성씨 44개, 수원 본관 성씨 44개 등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