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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비지정문화재非指定文化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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비지정문화재는 최근 평택시 전역의 도로 및 택지 개발 사업에 따른 조사·발굴 진행으로 많은 수가 보고됐다.
선사시대 유적은 원정리·지제동·방축리·현화리·토진리·소사동·남산리·송담리 등에서 발굴됐으며 청동기 시대 유적 비중이 높다.
괴태곶 봉수가있던 원정리 봉화재에서는 패총貝塚이, 칠괴동·가재동·송화리·석근리·현곡리·금곡리 등에서는 청동기 시대부터 조선 시대에 이르는 유물산포지가 확인됐다.
안중읍 현화리유적에서는 요지窯址가 발견됐으며, 도일동 안골마을에서는 제철유구製鐵遺構가 발견됐다.
오래된 집古家은 약 58개가 조사됐다.


[비지정문화재 중 발굴 보고된 선사유적]8)


구분 유적명 시대 소재지 유적수
유물산포지
평택 가재동 유물산포지1
조선
가재동 산24-5 외
205
생활유적
평택 내기리 유적
신석기
포승읍 내기리 241-3
5
수혈주거지
평택 소사동 유적
청동기
소사동 산35

12

건물지
평택 도일동 추정 건물지
조선
도일동 322(새골)
5
무덤유적
평택 도일동 애마총
조선
도일동 산82
2
토광묘
평택 도일동 유적
고려~조선
도일동 산221
2
고분군
평택 덕우리 고분군
고려
안중읍 덕우리 산81-2
16
분묘군
평택 가재동 수성최씨묘역
조선
가재동 산51-4(중리)
23
고려/조선민묘
최언호 묘
조선
가재동 산51-4(중리)
49
가공시설
평택 덕우리 방앗간
근.현대
안중읍 덕우리 80-1
1
제철
평택 도일동 제철 유적
조선
도일동 386(안골)
1
요업
평택 칠원동 유적
조선
칠원동 30-3
3
산성
평택 석정리 장성
고려
포승읍 석정리 산127
8
봉수
평택 망해산 봉수터
조선
팽성읍 신대리 산23(영창마을)
1
사지
평택 도일동 사지
조선
도일동 179-2
26
불상
평택 도일동 덕암선원 석불좌
조선
도일동 산65
7
불탑
심복사 3층석탑
고려
현덕면 덕목리 115
3
부도
약사사 부도조선
조선
안중읍 용성1리 378
3
탄생지
원균장군 생가터
조선
도일동 442(암말)
1
제당
평택 도일동 상리 당집
근.현대
도일동 산65
25
제의유적
평택 서정동 갈평마을 당집
시대미상
서정동 산136-1(갈평마을)
7
민속유정
평택 도일동 하리 당나무
시대미상
도일동 20-39(하리)
18
주거건축
장경렬 가옥
근.현대
팽성읍 석근리 10
67
객사
진위현 관아지 객사터
조선
진위면 봉남리 187-1
1
사우
모선재
조선
도일동 467
11
정려
양세충효정문
조선
도일동 82
16
비갈
정도전 제단비
조선
진위면 은산리 288-1
1
신도비
원준량 신도비
조선
도일동 산67
4
묘비
홍대성 묘표
조선
팽성읍 본정리 산32
2
충효비
이효순 효열비
조선
진위면 가곡리 291
4
고인돌
평택 동천리 지석묘
청동기
진위면 동천리 168
5
서식지
평택 동천리 왜가리 서식지
근.현대
진위면 동천리 산165-3
1
노거수
평택 도일동 참나무
조선
도일동 산206(원도일)
49


유적과 유물을 주제별로 분류하면 관방유적關防遺蹟 21개, 사찰 및 절터 22개, 불교유물 4종 8개, 비 약 60여 개, 사당 3개, 고분·묘 65개, 요지窯址 2개, 유물산포지 22개, 고가古家 58개, 생가터 1개, 종교유적 1개, 보호수 47개, 기타 3개다. 관방유적은 문헌상 기록까지 합하면 성 및 성터유적 19개, 봉수대 2개다. 성터유적은 대부분 토성土城으로 읍치邑治나 해안방어 또는 육로나 수로, 목장보호 등을 목적으로 만든 것이다. 사찰寺刹은 만기사·심복사·수도사·약사사 등 4개가 조사됐으며 고덕면 방축리의 서천사나 팽성읍
남산리의 용화사, 객사리의 자비사(전 망한사) 등도 전통사찰로 가치가 있어 관심이 요구된다.
불교미술은 불상 3개, 석탑 3개, 부도 2개, 석등 1개가 있다. 불상은 국가지정문화재로 평택 만기사철조여래좌상과 평택 심복사석조비로자나불좌상이 있지만 용화사에 있는 남산리사지 석조여래입상이나 방축리사지 석조여래입상 등도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석탑石塔 중 고려 전기에 조성된 것으로 보이는 심복사 삼층석탑은 당당한 기세나 비례미가 정연해 관심을 끈다. 『평택군지』나 『경기도의 역사와 문화유적』에는 빠져있으나 팽성읍 객사리의 망한사지(현 자비사) 경내 석탑은 형식상 고려 시대 것으로 보여 관심을 가져볼만하다.
는 신도비·묘비墓碑·선정비善政碑·기념비·충효비 등으로 구분되는데 이 가운데 비지정문화재로 주목되는 것은 팽성읍 본정리의 홍익한 묘갈과 평택시 도일동의 최경 묘갈, 그리고 평택향교와 진위향교 앞 선정비군의 비들이다. 묘비는 주인공의 정치·사회적 위치나 죽은 후 평가에 따라 글을 쓴 사람 또는 글씨를 쓴 사람의 지명도가 다르다.
이들 비의 주인공들은 당대에도 정치·사회적 지위를 누렸고 죽은 후의 평가도 엇갈려서 정치 사회사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사당祠堂은 죽은 사람의 정치 사회적 지위뿐 아니라 후대의 평가와 후손들의 정치·사회적 지위까지 반영하는 기념물이다.
평택에 비지정문화재로 지정된 사당은 청북면 고잔리 고령 신씨 동족마을에 조성된 고령 신씨 사당과 포승읍 희곡리 이대원장군 사당, 팽성읍 근내리 충정사 등 3개가 있다.
이들 사당 외에도 평택시 장안동 연안 차씨 사당, 대원군의 서원철폐와 일제 말 군사기지 건설로 사라졌지만 홍익한을 비롯한 삼학사를 배향했던 포의사 터 등은 사적지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특히 포의사 터는 팽성읍 함정1리(서원말) 선
말산 아래에 있었음이 최근 조사로 확인된다. 이 사우들은 조선 후기 평택지역의 대표적인서원(사우)이었고, 지역의 인재 양성이나 여론 형성에 큰 역할을 담당했기 때문에 조사가 있은 후 사적史蹟으로 지정할 필요가 있다.
는 고분古墳과 사묘私墓로 나눌 수 있다. 고분은 동천리나 수월암리 등 평택시 북쪽에서 몇 기가 발견됐지만 발굴조사가 이뤄지지 않아 정확한 역사적 가치를 판단하기 어렵다.
사묘는 원균 장군 묘와 이대원 장군 묘가 경기도 기념물 제56, 57호로 지정됐지만 대부분의 묘는 비지정 상태로 남아있다.
비지정된 사묘의 경우 개인 분묘墳墓보다는 평택지역 역가마터는 도일동 제철유구와 현화리 요지窯址가 있으며 이 가운데 현화리 요지가 주목된다.
현화리는 간척사업 이전만 해도 바닷가와 인접했고 어물과 소금이 많이 생산됐던 지역으로 토기 사용이 많았다.
동삭동 골점다리나 안중면 송담리 점촌, 포승읍 석정리 풀무골등에도 요지나 제철유적이 존재했을 것으로 보인다.

고가古家는 향교나 객사를 제외하고는 거의 민가民家다. 건축시기도 19세기 말을 넘지 않으며 대부분 일제 강점기에 건축된 것으로 칠괴동과 도일동을 비롯해 평택 전역에 22개나 있다. 유물 산포지는 1990년대 이후 평택 서부지방 개발과 도로건설 때문에 이뤄진 지표조사 및 발굴조사 결과로 고고학이나 역사적으로 중요한 유적이다.
평택지역은 아직 조사되지 않은 문화유적과 문화재가 많으며 특히 민속과 동족마을 조사, 생활사 부문에서는 좀 더 면밀한 조사와 정리 작업이 요구된다.



(이왕호_전)선문대학교 겸임교수)

 



[참고문헌]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평택시·경기도박물관, 1999.

『경기문화예술총람』, 경기도, 1990.

『평택군지』, 평택시, 1984.

『송탄시사』, 평택시, 1994.

평택시 공원녹지과 자료(수령 300년 이상), 2011.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평택시·경기도 박물관, 1999.

주석

8) 평택시·경기도박물관,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발굴조사보고서』, 199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