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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수월암리水月岩里59)
갑오개혁 뒤 진위군 이서면이었다. 1914년 수월암리·도도리道道里·종복리宗卜里를 통합해 수월암리라고 했다. 수월암리라는 지명은 거르미에서 왔다.
자연마을은 거리미(1리)·도도리(2리)·심교(3리)다. 20여 호가 모여 사는 수월암 1리 ‘거리미’는 원씨·윤씨·이씨가 대성大姓이다. ‘거리미’라는 지명은 ‘큰길가(거리)의 마을’이라는 뜻이다. 본래 농촌마을이었지만 주변에 공장이 들어서고 도로가 건설되면서 경관과 생활환경이 크게 변했다.
수월암2리 ‘도도리’는 40∼50호가 넘는 큰 마을이다. 해방 전후에는 60호가 넘었다고 한다. 마을 이름으로는 거리미가 대표지만 규모로 따지면 도도리가 중심이다. 도도리는 ‘거르미’의 한자지명이다. 거리미가 ‘수월암’ 또는 ‘뒷거리미’로도 쓰이기 때문에 도도리는 앞거리미였을 것이다. 곡산 강씨가 600여 년 전에 입향해 현재도 20호가 넘는다고 한다. 크게 아랫말·중간말·늠말로 나눠진다. 늠말에는 옛날 큰 무덤이 있었다. 당산과 당고개는 거리미와 경계에 있다. 이 고개는 매우 험해서 맹수들이 우글거리고 여우가 자주 출몰해 밤새 길을 헤매기도 했다 한다.
수월암 3리는 ‘심교’다. 심교深橋는 ‘깊은 다리’로 크고 작은 개울이 많은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이는 지명이다. 깊은 다리는 서탄으로 가는 큰 길과 심교마을에서 나가는 마을길이 만나는 지점의 다리 밑에 있었다. 이 다리는 예로부터 한양으로 나갈 수 있는 큰 길이어서 사람의 왕래가 잦았다. 다리 주변에 주막도 있었고 구전으로 전해지는 전설도 만들어졌다. 깊은 다리에는 향나무 옆에 가뭄에도 마르지 않는 맑고 시원한 우물이 있어 이름도 ‘향나무 우물’이었다. 심교 옆에는 서탄초등학교 내수분교가 있다. 교실 몇 칸의 작은 분교가 폐교되지 않고 살아남아 있다.
| 일제강점기 소작쟁의로 유명한 수월암2리 도도리(2007) |
| 배 과수재배가 발달한 수월암리(2007) |
주석
59) 강희분(82세, 수월암2리), 우간난(83세), 소진형(70세, 수월암2리), 이기성(54세, 수월암3리), 2006년 2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