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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성면은 전체면적이 32.38㎢이다. 오봉산을 주산主山으로 하며 오성들을 경제기반으로 해 형성됐다. 구릉이 적고 평야가 넓어서 일찍부터 논농사가 발달했다. 남쪽으로는 안성천이 팽성읍과 경계를 이루며, 동쪽으로는 진위천이 고덕면과 경계다. 북쪽은 청북면이고 서쪽에 안중읍이 있다. 근대 이전에는 내륙 깊숙이 바닷물이 유입돼 경작지가 적고 농업용수와 식수가 부족했다. 오봉산을 중심으로 구릉지대에 마을이 있었다가 점차 저습한 황무지와 갯벌이 간척되면서 안화들이나 오성들과 같은 평야지대에도 마을이 형성됐다. 상업은 안중리의 안중장을 중심으로 발달했다. 안중장은 근대 이후 국도 38호선과 국도 39호선이 교차하는 지점에 있었고, 포승읍 만호리 대진과 이어지는 해로교통과도 연결돼서 일찍부터 상업이 발달했다. 1989년 안중면이 분리 독립하면서 현재는 숙성리가 역할을 대신하고 있다.
오성면은 대한제국 시기 수원군 오타면·오정면·숙성면·언북면의 일부 지역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오타면 신리·고두면의 안화·숙성면 대겸당리·여수동·신기·소겸당·성적동·대죽동·장자동·소죽동·점촌·숙성리·대조두·주교동·오정면의 임촌·금곡·관두리·소반촌·대반촌·율리·학현·황금리·안정리·용촌·신촌·대삼정·중삼정·외삼정·미촌·길음리·탑현, 그리고 언북면의 당거리·탑원·홍원·안두원·안원·동원·교포·중대·창내·안중면의 안중·송담·황금을 통합해 오정면의 ‘오’와 숙성면의 ‘성’에서 한 글자씩 빌려 오성면이라고 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분리 독립하면서 금곡리·안중리·학현리·대반리·삼정리 18개 자연마을이 분동됐고 현재는 9개리 35개 자연마을만 남았다.72)
인구는 2012년 6월 말 현재 2,775세대 6,650명이다. 남자가 3,438명, 여자가 3,212명으로 여성에 비해 남성이 많은 편이다.
면소재지는 오성면 숙성리이며 오성면사무소·오성우체국·안중농협 오성지점·오성중학교·오성면보건센터·평택시농업기술센터가 있다. 숙성리와 인접한 죽5리에는 오성초등학교·농업기술원 종자관리소가 있다.
2005년 11월 공사를 시작해 2011년 4월 완공된 오성일반산업단지는 오성면 양교리와 청북면 토진리 사이에 위치했다. 오성초등학교는 1941년 오성국민학교로 개교했다. 전에는 안중읍에 안중초등학교만 있었고 거리가 멀어 불편했다. 오성면에는 황로식 씨가 설립한 ‘양교리강습소’와 서병창 씨가 운영하던 ‘서일학원’이 있었다. 두 사립학교를 통합해 4년제 초등학교로 개교한 것이 오성국민학교였다. 오성중학교는 1961년 5월 오성농예기술학교로 개교했다. 1967년 10월 오성중학교 설립인가를 받았으며, 1971년 학급을 증설해 오늘에 이른다.
오성면 숙성리의 평택시농업기술센터는 1957년 비전동(현 평택우체국)에서 평택군농사 교도소로 개소했다. 1962년 농촌진흥법 공포로 ‘평택군농촌지도소’로 이름이 바뀌었으며, 1964∼1965년에는 기구 확대개편으로 서정동·진위면 하북리·안중읍·구 평택시·팽성읍·오성면·청북면에 지소를 설치했다. 1975년 본소 4개계와 11개 지소로 확대됐으며, 비전동 평택여중 옆(현 KT)으로 청사를 이전했다. 1981년 시市 승격으로 송탄시농촌지도 상담소, 1986년 평택시농촌지도상담소가 개소했고, 1989년 본소와 지소를 통합해 본소 12개계, 송탄시상담소, 평택시상담소로 통폐합했다. 1994년 오성면 숙성리로 청사를 이전 했고, 1995년 3개 시·군 통합으로 ‘평택시농촌지도소’로 발족했으며 1997년 현재의 위치에 ‘평택시농촌지도소’를 신축 이전했다. 1998년 10월 기존의 농촌지도소를 ‘농업기술센터’로 명칭을 바꾸었다. 농업기술센터 내에 평택시농업박물관과 자연테마식물원을 운영하고 있으며 해마다 5월 초에 ‘평택꽃나들이축제’를 개최하고 있다. 슈퍼오닝농업대학 운영·전통음식·천연염색 교육 등 다양한 강좌를 개최하고 있고, 농업기술센터 앞에 농업생태공원을 조성 중이다.
| 오성면의 중심 숙성1리 일대(2013) |
| 오성면소재지에서 대조두 방향 원경(2013) |
주석
72) 조선총독부, 『신구대조 조선부군면리동명칭일람』, 19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