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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화이후 평택지역 시민사회운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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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87년 6월 항쟁 당시 평택에서도 지역추진위원회가 구성돼 전두환 정권에 맞서는 선언과 저항활동이 시작됐다. 1987년 6월 22일 수원장로교회에서는 ‘고문살인 은폐조작 규탄 및 호헌 철폐 경기지구 평화대행진 준비위원회’가 ‘민주헌법쟁취협의회’로 명칭을 바꾸고 6월 26일 투쟁방침을 세웠다. 그 후 7월 24일 10개 지부로 국민운동본부 경기본부가 출범한다.4)
평택지역의 뜻있는 사람들은 이 조직에 참여해 1987년 10월 24일 송탄·평택지부 를 시작했다.1987년 6월 항쟁은 시민운동 성장과 더불어 지역사회의 다양한 스펙트럼과 과제를 지닌 시민운동의 본격적인 분화와 전개를 유도했다. 사회단체는 권위주의 국가의 후견을 받는 관변단체, 저항의식이 강하고 상대적으로 급진적인 사회운동단체, 중간지대에 탈 정치화된 혹은 비非정치화된 시민사회단체 등 크게 3가지 유형으로 구분돼 존재했다.
관변단체나 탈 정치화된 시민사회단체들은 합법적인 영역에 존재할 수 있으나 저항적인 시민사회단체는 합법적 영역에서 존재하기 어려워 비합법단체로 활동할 수밖에 없었다.
그러나 1987년 6월 항쟁 이후 상대적으로 자율적인 제도정치영역과 사회운동영역이 확장됐으며 사회운동의 존재조건을 변화시켰다.
비록 제한적이지만 변화된 상황은 계급적 대중운동의 조직적 발전과 저항적 사회운동의 확산을 가능하게 하고 다른 한편으로는 온건한 사회운동이 출현할 공간을 부여함으로써 사회운동의 다원화를 추동하는 효과를 낳았다(조희연, 2004: 64-65). 전자와 관련해서는 민중운동의 전통을 계승한 다양한 부문운동 확산이라 할 수 있다.
이 시기 지역 운동적 관점을 가진 부문운동 단체는 ‘평택농민회’와 ‘평택한사랑청년회(후신 평택새물결청년회)’가 두드러진다. 후자와 관련해서 군부권위주의시기 반독재민주화운동을 주도했던 민중운동과 구별되는 시민운동이 출현하게 되고 시민운동 내부에서도 다양한 분화현상이 나타났다. 권위주의 체제하에서 탈정치화 혹은 비정치적 단체로 생존하던 단체들의 사회 참여적 성격도 강화됐다. 기독교운동에서 사회 선교적 문제의식이 강화된 것이나 YMCA가 1980년대 이후 다양한 사회적 이슈에 발언을 하기 시작한 것도 이런 예라 할 수 있다(조희연, 2004: 66-67). 평택지역은 1987년 항쟁 이후 2000년 초반까지 다양한 NGO가 등장하며 환경·교육·문화·시정감사·여성·소비자·자원봉사 등활동영역도 넓어지고 부문도 청년·농민·노동·청소년 등으로 범위가 확대된다.
주석
4) 소속지회와 출범일은 다음과 같다. 성남지부(7.13), 안성지부(8.22), 남양주·구리지부(7.22), 파주·고양지부
(9.14), 여주지부(8.25), 강화지부(9.18), 김포지부(9.5), 화성지부(9.14) 동두천지부(9. 26)