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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지명유래 > 청북면
■ 청북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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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렴리古念里


양성현 감미면의 중심지다. 1914년 감미동·고란평·발오곡을 병합해 고렴리라고 해 화성군 양감면에 편제됐다.
  1987년 1월 1일 행정구역 조정에 따라 평택시 청북면으로 편입됐다.



• 감미동 : 고렴1리의 자연마을. 감미부곡의 중심이어서 ‘감미동’, 주민들이 개미처럼 부지런하다고 해서 ‘개미굴’로도
     부른다. 아랫말·중간말·웃말로 나뉜다.

• 늘언 : 고렴2리의 자연마을. 바닷물이 들어오던 갯벌에 제언을 쌓아 간척해 유래됐다.
     ‘발오곡’, ‘발오동’이라고도 부르며 ‘점촌’, ‘뱃터’와 같은 지명이 있다.

• 고란평古蘭坪 : 고렴3리의 자연마을. 고란皐蘭이 많이 나서 유래했다는 설도 있다.



고잔리高棧里


양성현 감미면 지역. 1914년 후수리·전평·중평·후평·고잔리·대곡·목진면 후평리를 통합해 고잔리라 했다.
  고잔이라는 지명은 지형이 바닷물이 들어오는 곶의 안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 후평後坪 : 고잔1리의 자연마을. ‘뒤들’을 한자로 표기하면서 유래됐다.

• 전평前坪 : 고잔2리의 자연마을. ‘앞뜰’에서 유래했다.

• 도마지 : 고잔과 고염리를 합쳐 도마지라 한다. 조선시대 핍박을 받던 고령 신씨가 도망쳐 피신한 곳이라고 해
     유래됐다. 보한재 신숙주의 사당 고잔묘가 있다.

• 원목原木 : 고잔4리의 자연마을. 제언(원둑)을 쌓은 간척지의 입구에 마을이 형성돼 유래됐다.

• 대곡大谷 : 고잔5리의 자연지명. 본래 ‘큰골’이라고 했는데 한자화 됐다.

• 서대곡西大谷 : 고잔8리의 자연마을. 본래 ‘서대울’이라고 했다.

• 중평中坪 : 전평前坪과 후평後坪의 가운데 있어 유래됐다.

• 농곡農谷 : 경작지가 많은 지역이라는 뜻. ‘논골’이라고 한 것이 한자화 됐다.

• 혁명촌革命村 : 고잔6리의 자연마을. 한국전쟁 때 피난 온 사람들이 연백사업장을 간척 하면서 형성된 마을.
     5·16 군사정변 뒤 분동되면서 ‘혁명촌’이라 했다.

• 청룡靑龍 : 고잔7리의 자연마을. 1970년대 말 대청댐 수몰민들이 이주한 마을로 충청도의 ‘청’과 용의 기운으로
     마을이 번성하라는 뜻에서 ‘용’을 넣어 이름을 지었다.



백봉리栢峰里


근대전후 수원군 수북면지역. 1914년 백봉·조염동·벽동·평촌을 통합해 백봉리로 했다.



• 백봉 : 백봉1리의 자연지명. 본래 조선 태조 때 왕자의 난으로 피신한 여섯 왕자가 숨었던 곳이라고 해서 ‘육자지’
     라고 했는데, 형제들이 피신한 곳을 알게 된 이방원이 왕자들을 찾아내 죽이면서 오뉴월 삼복더위인데도 눈이 내려
     산을 하얗게 덮었다고 해 그 뒤 ‘백봉白峰’으로 부르게 됐다는 전설이 있다.

• 벽동璧洞 : 백봉2리의 자연지명. 본래 ‘두팽이’ 또는 옛 마을이라는 뜻에서 ‘구실’이라고 했던 것이 ‘구슬’이 됐고
     이것을 한자로 ‘벽동’이라고 했다.

• 벌말 : 구슬에서 안탑모퉁이 방향으로 가는 도중에 있는 마을. 순흥 안씨들이 많이 거주했다.

• 도렴동·평촌 : 백봉리의 자연마을. 진위천의 침식작용으로 폐동됐다.

• 백봉산 : 본래 육자지산으로도 부르다가 나중에 백봉산이 됐다. 산성이 축성됐으며 3·1운동 당시 안화리의 안육만
     등이 만세를 불렀다.



삼계리三溪里


조선시대 양성현 감미동면 지역. 1914년 독개를 통합할 때 마을 앞 하천이 삼합류하는 곳이라고 해서 삼계리라 했다.



• 원삼계元三溪 : 삼계1리의 자연마을. 윗말과 아랫말로 구분된다.

• 옹포瓮浦 : 삼계2리의 자연지명. 조선시대 양성현의 해창이며 조선후기에는 포구상업이 크게 발달했고 일제강점기
    에는 동척농장의 곡식들과 공출미가 반출됐던 곳이다.

• 신촌新村 : 삼계3리의 자연지명. 1882년경 마을이 형성되면서 ‘분말’로 부르다가 1939년 원삼계 마을과 나뉘면서
     ‘신촌(새말)’이라고 했다.

• 월곡月谷 : 삼계4리의 자연지명. 달처럼 타원형의 계곡이라고 해서 ‘달마골’ 또는 ‘월곡’이라고 했다.

• 신영촌 : 삼계 5리의 자연지명. 한국전쟁 뒤 이북 피난민들이 정착해 형성됐다.

• 성곡城谷 : 마을이 산성山城의 골짜기에 위치해 유래했다.



어소리魚沼里


조선후기 수원군 토진면 지역. 1914년 어소리·고좌리 일부·서신리면 구설창리·석우리를 통합해 진위군 청북면
   어소리가 됐다. 어소라는 지명은 예전에는 마을 어귀에 웅덩이(소)가 있어서 유래됐다.



• 원어소元魚沼 : 어소1리의 자연지명. ‘으시’, ‘어못’이라고도 한다.

• 구억말 : 어소2리의 자연지명. 구석 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 구설창 : 어소3리의 자연지명. 조선시대 수원도호부의 설창이 있었지만 나중에 용성3리 설창마을로 옮겨갔다.



어연리魚淵里


조선후기 양성현 율북면. 1914년 어연리·황곡·하가천리·율북면 항곡을 통합해 어연리라고 했다.



• 원어연元魚淵 : 어연1리의 자연지명. 마을 앞에 물고기 웅덩이가 있어 ‘어못’, ‘어모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어연이라 했다.

• 황곡黃谷 : 어연2리의 자연지명. 황새가 날아들었던 마을 또는 황 씨들이 살았던 마을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옥길리玉吉里


수원부 청룡면 지역이었다가 1914년 신기·가사·옥길을 통합해 옥길리라 했다. 무성산에 군사가 주둔할 때 감옥을
   두었기 때문이라는 이야기가 전해온다. 청북지구 택지개발로 원옥길과 신기마을 대부분이 폐동됐다.



• 원옥길元玉吉 : 옥길1리의 자연지명.

• 가사佳士 : 옥길2리의 자연지명. ‘개사리’라고도 한다. 바닷가에 모래가 아름다워 유래됐다.

• 기산 : 옥길3리의 자연지명. ‘퇴미’라고도 한다. 무성산 아래에 터를 잡아 유래됐다는 말이 전해온다.

• 신기新基 : 옥길4리의 자연마을. 새로 형성된 마을이어서 ‘새터’라고 했던 것이 한자로 ‘신기’가 됐다.



율북리栗北里


조선시대 양성현 율북면지역. 1914년 밤뒤·불정·상가천을 통합해 밤뒤의 한자지명인 율북리라 했다.



• 원율북元栗北 : 율북1리의 자연지명. ‘밤뒤’라고 부른다.

• 내촌內村 : 율북2리의 자연마을. 안쪽에 위치해 유래됐다.

• 상가천리上佳川里 : 옛날 하천 변에 있는 마을. 잦은 홍수로 폐동됐다.

• 장계동長桂洞 : 율북3리의 자연지명.

• 상현리桑峴里 : 율북4리의 자연지명. 마을 모퉁이에 고개가 있고 그 옆에는 밭이 있어 뽕나무고개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상현’이라 했다.

• 불정佛井 : 율북5리의 자연지명. 옛날 풍수쟁이가 이곳에 절을 짓고 정결한 우물을 파놓으면 마을에 복과 덕이 있을
     것이라는 말에 따라 마을 사람들이 합심해 실천했다는 데서 유래했다고 한다. ‘부처말’이라고도 한다.



토진리土津里


조선시대 수원군 토진면. 1914년 토진리·고좌리 일부지역을 통합해 토진리라 했다. 토진은 톷나루의 한자지명이다.



• 원토진元土津 : 토진1리의 자연지명. 본래는 ‘돛나루’였다.

• 고좌高座 : 토진2리의 마을. 침식작용으로 마을에 피해가 많아 높은 지대로 옮겨 살면서 유래됐다. ‘고재’, ‘고자’,
     ‘높은자리’라고도 한다.

• 국길國吉 : 토진3리의 자연마을. 본래 ‘귀락’, ‘국길실말’을 줄여서 ‘국길’이라고 했다.

• 가재울 : 국길 동북쪽의 마을.



한산리閑山里


조선시대 양성현에 속했다가 갑오개혁 뒤 수원군 토진면과 수북면으로 편제됐다.
   1914년 판교동·강포리·한산리·수북면 한산리·서신리를 통합해 한산리라 했다.



• 원한산元閑山 : 한산1리의 자연마을.

• 수부壽富 : 한산2리의 자연마을. ‘숫뿌리’의 한자지명이다.

• 망포網浦 : 한산3리의 자연지명. 바닷물이 들어오던 포구였다. ‘망개울’이라고도 한다.

• 방죽거리 : 한산3리의 자연마을. 방죽이 있었다.

• 판교板橋 : 수원으로 가는 큰길에 하천을 건너는 널다리가 있어 ‘널다리’, ‘너더리’라 부르던 것이 한자로 ‘판교’가
     됐다. 너더리에는 주막과 장시가 열렸다.



현곡리玄谷里


조선시대 양성현 지역. 1914년 가마울·광승·토진면의 건의를 통합해 현곡리라 했다. 현곡은 ‘가마울’의 한자지명이다.



• 원현곡元玄谷 : 현곡1리의 자연마을. 가마울로 부르던 것을 한자로 현곡이라고 했다.

• 신포新浦 : 현곡2리의 자연마을. 조선후기 포구가 발달하고 장시가 열리면서 주막과 객주가 들어섰고, 한국전쟁 뒤
     가마울 주민과 피난민이 이주하면서 독립된 마을이 됐다.

• 광승光升 : 현곡3리의 자연마을. 명봉산이 큰 성채城砦와 같아 ‘광성廣城’이라고 했던 것이 ‘광승’으로 변했다.

• 건의乾宜 : 현곡4리의 자연지명.



후사리後寺里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청룡면 지역. 1914년 오금·무릉리를 통합해 후사리라 했다. 후사라는 지명은 절뒤에서 왔다.



• 원후사元後寺 : 후사1리의 자연마을. 본래 알미산 건너 북탕골에 절이 있어 ‘절뒤’ 또는 ‘뒷저루’라고 부르던 것을
     한자로 ‘후사’라고 했다. 뒤쪽에 벌떼라는 자연마을도 있다.

• 오금梧琴 : 후사2리의 자연마을. 오동나무를 많이 심어 거문고를 만들어 팔았던 마을에서 유래됐다. ‘오그미’라고도
     부른다.

• 무릉武陵 : 옛적에 무사들이 무술 연습을 하던 곳이라는 설과 큰 무덤이 있었기 때문에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 알미산 : 후사1리 뒤편에 있는 봉우리. 새의 알처럼 생겨 알봉산이라고도 한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