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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재의 법정지명
조선시대 평택현(팽성현彭城縣) 지역은 1914년 통합 당시 옛 평택군 읍내면邑內面·동면東面·서면西面·남면南面·북면北面과 옛 진위군 언북면堰北面(직산 언리면과 평택 소북면의 통합 지역)의 동북지역 일부 등으로 추정된다.
[조선시대 평택현 지역으로 추정되는 현재 지명(화천역 포함)]
구분 | 현재 법정 지명 |
---|---|
평택지역 | 군문동, 평택동 일부, 통복동 일부, 합정동 일부 |
팽성읍 | 객사리, 근내리, 남산리, 내리, 노성리, 노와리 일부, 대사리, 대추리, 동창리, 두리, 두정리 석근리, 석봉리, 송화리, 신궁리, 신호리, 안정리, 원정리, 평궁리 일부, 함정리 |
고덕면 | 동고리 일부 |
화천역(팽성읍) | 추팔리 일원 |
행정구역의 변천
백제의 하팔현河八縣이었고, 신라시대 757년(경덕왕 16) 평택현으로 고쳐17) 탕정군湯井郡의 영현이 됐다. 고려시대 1018년(현종 9) 천안天安의 속현이 됐다가 뒤에 감무監務를 두었다. 조선시대 1413년(태종 13) 현감으로 바꾸었고 충청도에 속했다. 『경국대전』에 평택현
은 종6품 현감이 있으며 홍주진관병마절제도위洪州鎭管兵馬節制都尉를 겸했다. 1505년(연산군 11) 6월 평택현·직산현·진천현·아산현 등과 함께 충청도에서 경기도로 옮겼다.18)
1596년(선조 29) 왜구 침입으로 고을이 쇠잔해지자 평택현을 혁파해 직산에 예속시켰다.
가 1610년(광해군 2) 다시 설치했다. 읍호邑號는 팽성이라고도 한다.
| 여지승람도 충청도 |
*충청도 북쪽지역에 평택과 직산이 보인다.
조선후기에 현내면縣內面·동면東面·서면西面·남면南面·북면北面·소북면小北面 등 6개 면이 있었다.
1895년(고종 32) 내무대신 박영효朴泳孝의 제안으로 충청도의 평택현을 직산현에 합치는 논의가 있었으나19) 같은 해 지방제도 개편으로 평택현은 평택군이 돼 공주부에 속했다.20) 1896년 전국을 13도제로 편제해 충청남도 행정구역으로 바뀌었다.
주석
17) 『고려사』 지리지와 『신증동국여지승람』에서는 고려 때 평택으로 고쳤다고 한다(『新增東國輿地勝覽』 권19 평택현).
18) 『燕山君日記』 권58 11년 6월 29일 임오.
19) 『고종실록』 권33 32년 정월 29일 신축.
20) 『고종실록』 권33 32년 5월 26일 병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