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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6만 명이나 되는 왜적의 침입 속에서도 조선이 살아남을 수 있었던 것은 무엇보다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쳐 싸운 백성들의 희생 덕분이었다. 양반들은 각지에서 일어난 의병과 전장에서 무장으로 활약해 큰 역할을 했다. 임진왜란이 끝난 후 조선정부는 일본군과 싸운 공적이 있는 18명을 선별해 선무공신宣武功臣으로 표창했다. 선무공신 중 평택지역 출신은 두 명으로 선무공신 1등으로 녹훈된 원균과 선무공신 2등인 이정암이다. 그 외에도 평택지역에는 임진왜란 때 무장으로 전쟁에 참가해 순절하거나 공을 세운 사람들의 이야기가 많이 전해진다. 특히 이대원李大源(1566∼1587)은 임진왜란이 발생하기 직전에 전사했으나 임진왜란의 전초전이었다는 의미에서 그리고 평택지역에서 태어난 영웅이라는 면에서 주목할 만한 인물이다. 또한 방덕룡(1561∼1597)은 원균과 이순신이라는 걸출한 장수들 휘하에서 선봉이 돼 싸우고 마지막에는 이순신과 함께 전사한 장수였다는 점에서 임진왜란과 정유재란에서 빼놓을 수 없는 중요한 인물이다. 이대원·원균·이정암·방덕룡 이외에도 신립과 함께 탄금대에서 싸우다 전사한 이운룡李雲龍66), 원균의 동생으로 의병을 일으켜 진위와 용인을 지킨 원연元埏, 이순신의 좌선봉장으로 활약해 선무원종공신 1등에 녹훈된 정담수鄭聃壽 등도 평택지역 출신으로 왜란 당시 활약했던 인물들이다.
주석
66) 이운룡이라는 인물에 대해서는 다른 기록이 전한다. 원균 휘하에 거제도 옥포만호로 있다가 옥포해전에서 선봉장으로 전공을 세웠다는 기록도 있다. 하지만 이 인물이 평택지역이 배출한 이운룡과 동일인인지에 대해서는 확인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