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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 지역의 전기 의병항쟁
본문
의병항쟁이 한창이던 1896년 7월경 진위 평택 소재 수어영守禦營 사음舍音 조봉삼趙鳳三
이 「서간보고서」에 당시 인근 주민과 의병이 합세해 의병 활동을 함으로 경작한 곡물을 수
송하기가 어려워 이를 팔아 상납한다는 내용이 있다. 진위지역 전체에도 의병이 출몰했고
주민들이 합세해 주둔군이 이를 막지 못하고 도망했으며 이에 정부 진압군이 내려와 진압
했음을 알 수 있다.
팽성지역 일대의 의병들은 충청도 의병진인 천안군 의병대에 가담했고, 현덕면 덕목리와
황산리 의병들은 아산군 의병진에 가담했다. 천안군 의병대는 천안군수 전병숙全炳塾을 피
살했으며 아산군 의병진은 아산군수를 체포하기도 했다. 평택지역 의병들은 여주·이천·
충청도 지역의 제천·충주 의병들과 합류했다.
전기 의병항쟁의 특징은 첫째 양반 유생들이 주도했고 둘째는 근왕적 성격이 강했다는
점이다. 그러나 평택지역의 전기 의병항쟁은 주도층인 양반 유생 계층보다는 민중들의 참여가 다른 지역에 비해 두드러졌다. 평택지역은 평야지대가 많아 농업에 종사하는 주민들이 많았기 때문인 것으로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