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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선정비·공덕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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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어느 지역이나 방백이나 수령을 지낸 인물들을 기리는 선정비가 산재해 있다. 일반 적으로 조선시대 수령 선정비는 기만적이고 위선적인 비가 많다고 생각돼 왔다. 그래서 선 정비에 기록된 인물을 탐관오리로 백안시하곤 했다. 목천 현감을 지냈던 안정복은 자신의 선정비를 모두 뽑아버리고 임지를 떠났다고 전해진다. 이는 선정비가 백성들에게 많은 부 담과 폐해가 됐음을 알려주는 일화다. 그러나 선정비가 일반인들이 알고 있는 인식과 부합 되는지에 대한 실증적인 점검은 매우 미미한 편이다. 실제로 인근의 안성, 죽산, 과천지역 의 연구 사례를 보면 해당지역 선정비의 46%가 치적이 분명하거나 특별한 행적을 보인다. 평택시에 세워진 선정비의 주인공도 특별한 행적을 보인 경우이다.
또한 빈민구제나 교육사업 등 지역민을 위해 특별한 행적을 기린 비들이 있다. 이 경우 공덕비功德碑나 불망비不忘碑로 이름 붙였다. 이런 비석들은 대부분 혜택을 받은 지역주민 들이 자발적으로 세운 것들이다. 비석을 세우는데 적지 않은 비용이 소요됐지만 지역민들 이 뜻을 모아 세운 시혜불망비는 의미가 크다.
지방관의 선정비 또는 시혜불망비는 해당되는 각 지역에 세워졌는데, 1980~90년대 들 어 평택지역의 경우 대부분 비들을 진위향교 앞이나 평택향교 앞에 모아놓았으며, 나머지 소수의 비들이 읍·면사무소나 해당 지역에 산재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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