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통복동사무소 관내의 통복동 지역에는 낙촌(통복1리), 동삼거리(통복2리), 서삼거리(통복3리)와 같은 마을이 있었다. 1986년 평택시가 승격되면서 낙촌이 1·2·6·7통으로 편제됐다. 동삼거리(일명 개전로터리)가 3·8·9·10·11통으로, 서삼거리(일명 시장로터리)가 4·5·9통으로, 그리고 1994∼1995년 사이에 준공된 동아국화아파트가 12통, 신명보람아파트가 13통으로 편제됐다. 2008년 1월 1일 평택시 통리반 설치조례 개정에 따라 통폐합이 이뤄져 현재는 11개 통으로 변경됐다.
낙촌은 본래 삼각산(자란산) 뒤쪽 경사면에 위치해 ‘낭떠러지’라고 불렀던 것이 한자화하면서 유래됐다. 이곳은 북사면에 위치해 민가가 거의 없었지만 조선 말 박해를 피해 숨어든 천주교인들이 옹기가마를 짓고 옹기를 구워내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낙촌의 또 다른 이름인 ‘점촌店忖’은 옹기를 굽던 수공업자 마을에서 유래된 지명이다. 한국전쟁 뒤에 평택시장이 통복동으로 옮겨오면서 우시장이 개장됐다. 우시장은 농업이 기계화되자 농우의 수요가 급감하면서 폐장됐다. 우시장이 폐장된 뒤 라이온스공원과 민가들이 들어서 현재 모습을 갖게 됐다.
동삼거리는 통복시장 동쪽마을을 말한다. 평택시가지가 동쪽으로 넘어오기 전 이곳은 평택-안성 간 국도 38호선과 평택-원곡 간 신작로가 갈라지는 지점이었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농업이민자 20여 호가 정착해 사과와 배를 재배하는 과수원을 경영했다. 세무서터에는 1913년에 인가받은 평택공립보통학교(현 평택성동초등학교)가 팽성읍 객사리에서 이전해 1937년까지 머물렀다. 1953년 통복시장이 조성된 뒤 미곡시장, 가축시장, 식료점, 잡화점, 포목전 같은 상점들이 상업 활동을 하고 있다.
통복시장 서쪽지역인 서삼거리도 일제강점기 신작로 가설과 함께 형성된 마을이다. 본래 이곳은 국도 1호선과 국도 45호선이 갈라지는 지점이며 서쪽에 위치한 삼거리여서 서삼거리라고 불렀다. 일제강점기에는 일본인 심상소학교가 통복교 근처에 있었고, 민가 10여 호가 살았다. 1953년 통복시장이 조성되면서 어물전, 채소전, 고추전, 그릇전, 과일전이 자리를 잡았다. 현재도 통복시장의 중심을 형성하고 있지만 대형할인마트와 아울렛에 밀리는 실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