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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8도제와 군현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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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8도 지도

| 조선 8도 지도 |



1392년 이성계는 고려 공양왕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았다. 중국 명나라에서 국호를 내려 받은 이성계는 공식적으로 조선이라는 새로운 나라의 주인이 됐다. 조선은 건국과 함께 유교를 국가의 중심이념으로 삼고 국가통치를 시도했다. 고려의 정치제도와 통치기구 역시 유교사상에 입각해 재정비됐다. 이러한 변화는 중앙 정부의 지방에 대한 통치체제에서도 일어났고, 지방의 향촌사회는 새로운 변화를 맞이하게 됐다.50)

조선의 지방 통치체제 기둥이 되는 군현제郡縣制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으로 통일신라와 고려를 지나면서 점차 한반도에 자리를 잡았다. 조선시대에 이르러서는 시스템이 더욱 정교해지고 체계화 됐다.51) 기존의 중층적이고 다원적이었던 도제道制와 군현제는 일원화됐고 많은 자율성을 갖던 지방 세력들은 중앙으로 부터 더 강력한 통제를 받는 중앙집권적인 모습으로 변화했다.

사실상 이런 변화는 고려시대부터 조금씩 일어나고 있었다. 고려 중기인 예종 때부터 중 앙 정부는 끊임없이 각 지방을 중앙 정부의 통제 하에 놓으려고 시도했다. 지방관 없이 향 리들이 다스리는 속현屬縣에 감무監務를 파견해 주현主縣으로 만들거나 주변 군현에 소속시 켜 군현을 조정하는 동시에, 향·소·부곡도 수령이 직접 통제하는 직촌直村으로 개편하려 는 시도를 계속했다. 이런 지방제도 개편은 중앙 정부의 지방 통제를 의미하기 때문에 각 지방의 토착 세력인 향리들의 반발을 불러오기도 했다. 하지만 점차 지방에서 향리들의 세 력은 약화되고 수령의 권한이 강화되는 등 변화가 시작됐다.

조선조에 들어와 태종 15년(1413)에는 전국을 8도로 확정하고 『세종실록지리지』가 편찬 되는 세종 14년(1432)까지는 8도가 330여개 군현으로 정리됐다. 군현은 그 크기와 중요 도에 따라서 주·부·군·현州府郡縣으로 나뉘었고 중앙에서는 등급에 따라 수령을 파견해 관찰사의 통제를 받도록 하는 수령제도가 확립됐다. 조선의 군현제가 가지는 특징 중 하나 는 각 군현이 상하관계가 아닌 독립적인 성격을 가진다는 점이다. 각 군현의 수령은 중앙 과의 직접적인 관계 밑에 놓여 있었기 때문에 중앙집권적 측면이나 각 지역이 서로 간섭을 주거나 받지 않아 자유로운 분권적인 측면이 동시에 존재할 수 있었다.

면리제는 조선후기에 들어와서야 실시됐던 것으로 보인다. 면리제는 국가의 행정통치가 군현보다 더 작은 단위인 면과 리에까지 미치게 된 것을 의미한다. 하지만 가장 작은 행 정단위인 리는 여러 자연촌락(마을)들을 포함하고 있었다. 리 단위 아래 주민들의 자치성 은 국가에서 인정하고 있었다는 점도 주목해야 한다. 또한 면리의 형성이 지역 주민들의 자치성을 거스르지 않는 범위에서 확정됐다는 사실도 지역 자율성에 대한 조선의 인식을 보여주는 측면이다. 조선의 지방통치 체제는 고종 32년(1895) 5월에 실시된 23부제를 거 쳤다가 이듬해인 1896년 8월 13도제가 실시될 때까지 큰 틀이 유지됐다.

오늘날 평택시의 범위는 조선시대 평택현과 진위현과 수원부·양성현·직산현 등의 일 부 지역이 포함된다. 현재의 평택이 조선시대에는 하나의 군현이 아니었기 때문에 한눈에 살펴보기에는 곤란한 점이 많다. 게다가 현재 팽성 지역인 평택현도 연산군 시기를 제외하 고는 대부분 경기도가 아닌 충청도에 속해 있었기 때문에 일관성 있게 설명하기 어려운 점 이 많다. 따라서 현재 평택시에 속하는 지역들 중 조선시대 내내 독립적으로 존재했던 진 위현과 평택현을 중심으로 그 역사와 성격을 살펴본다.



주석

50) 국사편찬위원회, 『한국사』 23권, 국사편찬위원회, 1993.
51) 한충희, 「조선초기 도제와 군현제 정비연구」 『계명사학』 15,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