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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경기도지정 문화재자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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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지정 문화재자료 중 평택향교는 조선시대 평택지방의 중등교육을 담당했던 교육기관으로 문화재적 가치뿐 아니라 청소년의 향토사 교육에도 중요한 자료다. 진위향교 대성전은 병자호란 후 17세기 후반에 중건됐으며 19세기 전반에 보수된 건물로 조선후기 건축양식을 보여주는 중요한 문화재다.
홍학사 비각은 병자호란 당시 청과의 화의를 끝까지 반대하다가 죽임을 당했던 홍익한과 그의 아들 홍수원, 증손자 홍대성의 묘표墓表를 모셔둔 비각碑閣이다. 홍익한은 조선 후기 충절을 상징하는 인물로 평택지역 인물사 연구뿐 아니라 조선 후기 정치와 사회상 연구에 필요한 인물이다.
평택 서천사 석조여래좌상은 2007년 9월 3일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1호로 지정됐다. 1352년 나옹화상이 창건하고 1623년 인조반정 당시 전소된 후 1870년 동파비구가 미륵불을 발견해 사찰을 중창했다. 1953년 화재로 소실돼 1954년 법당을 지었다. 제작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지만 사찰 중창시기로 볼 때 19세기말에서 20세기 전반에 제작된 것으로 추정된다. 세부조각과 의습 등이 정확하게 표현돼 문화재적 가치가 있다. 약사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2013년 11월 12일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69호로 지정됐다.



[경기도지정문화재자료] 4)


번호 명칭 위치 지정번호 지정일 시대
1
평택향교
팽성읍 부용로 17번길 40
경기도문화재자료
제4호
1983. 9. 19 조선시대
2
홍학사비각
팽성읍 본정 1길 8-16
경기도문화재자료
제5호
1983. 9. 19 조선시대
3
진위향교대성전
진위면 진위로 49
경기도문화재자료
제40호
1983. 9. 19 조선시대
4
평택 서천사
석조여래좌상
고덕면 방축4길 22-49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41호
2007. 9. 3 조선시대
5
평택 약사사
석조지장보살좌상
안중읍 용성3길 120-10
경기도문화재자료
제169호
2013. 11. 12 조선시대


| 평택향교 |



평택향교平澤鄕校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호(지정일 : 1983. 9. 19)

소 재 지 : 팽성읍 부용로 17번길 40



조선 초기에 건립된 것으로 추정되며 일제강점기에는 한때 농민학교로 사용하기 위해 외삼문을 철거하기도 했으며 1979년 4월 23일 복원했다.
향교는 서원과 더불어 조선시대 대표적인 유교건축이다. 조선시대 향교는 관에서 운영하는 국영교육기관이었다. 공자와 성현들의 위패를 모시고 기리는 제향공간과 공부를 하는 강학공간으로 구분된다. 홍살문을 지나 담장 중앙에 강학공간인 명륜당과 동재·서재가 있다. 명륜당은 정면 5칸, 측면 2칸, 단층 팔작 기와집으로 민도리양식이다. 명륜당 뒤편 에 솟을삼문과 대성전이 있다. 배향공간인 대성전은 정면 5칸, 측면 3칸, 단층맞배 기와집이다. 막돌허튼층쌓기의 기단위에 막돌초석을 놓고, 두리기둥을 세워 공포를 짜 올린 익공식翼工式 건물이다.



홍학사 비각(포의각)洪學士 碑閣(褒義閣)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5호(지정일 : 1983. 9. 19)

소 재 지 : 팽성읍 본정1길 8-16



병자호란 때 척화파로 청나라에 끌려가 죽임을 당한 3학사三學士(홍익한·오달제·윤집) 가운데 홍익한洪翼漢(1586∼1637) 비각이다.
홍익한은 본관이 남양南陽, 초명은 습, 자는 백승伯升, 호는 화포化浦·운옹雲翁이다. 찬성 숙의 현손으로 진사 이성以成의 아들이며 백부인 교위 대성大成에게 입양됐다. 1615년(광해군 7) 생원이 됐고 1624년(인조 2) 공주행재 정시문과에 장원으로 급제해 사서를 거쳐 1635년 사헌부장령을 지냈다.



|홍학사 비각(포의각)|



1636년(인조 14) 병자호란 때 최명길 등의 화의론和議論을 반대했는데 이 난으로 그의 두 아들과 사위를 모두 적에게 잃었다. 아내와 며느리는 적에게 붙들렸으나 자결했으며 늙은 어머니와 딸 하나만 살아남았다. 이듬해 평양부서윤직에 있을 때 화친을 배척한 두목으로 지목돼 오달제吳達濟·윤집尹集과 함께 청나라에 잡혀가 죽임을 당했다. 비문은 우암 송시열이 지었다하며 현재 글씨가 마멸돼 내용을 알아보기는 어렵다. 2기의 비문이 모두 화강암으로 돼 있으며 매년 3월 31일에 제향한다.



|홍학사 비각(포의각)|



진위향교 대성전振威鄕校 大成殿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40호(지정일 : 1983. 9. 19)

소 재 지 : 진위면 진위로 49



조선 초기에 건립된 교육기관이다. 본래 건물은 병자호란 때 불타 없어지고 위패는 하리下吏 최응수崔應守가 자기집에 소중히 간직했다가 후에 초가집 두어 칸을 지어 봉안했다.
1644년(인조 22) 진위현령 남두극南斗極이 향교 중수를 시작해 기와집을 짓고, 1646년 현령 이산뇌가 동헌東軒을 지었으며, 1660년(현종 2) 현령 송박宋朴이 향교대청을 증수했다.
1665년 현령 이관하李觀夏가 향교담장을 개축했으며, 1839년(헌종 5) 현감 황종림黃鍾林이 명륜당을 개축하고 대성전을 보수했다. 동재東齋·서재西齋는 정면 2칸, 측면 1칸의 팔작지붕에 한식 골기와 건물이다. 외삼문外三門은 본래 맞배지붕인 것을 1990년에 증축했다.
대성전은 조선 후기 건축양식이며 정면 3칸, 측면 3칸의 단층 맞배지붕으로 한식기와를 얹었고 처마는 겹처마이다. 양 측면에는 방풍판防風板이 있다. 명륜당明倫堂은 정면 4칸, 측면 2칸의 단층 팔작지붕으로 한식기와 건물이다.



|진위향교 대성전|



평택 서천사석조여래좌상平澤 暑天寺石造如來坐像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41호(지정일 : 2007. 9. 3)

소 재 지 : 고덕면 방축4길 22-49



19~20세기 전반에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되며 커다란 두상과 목은 짧고 삼도는 없으며 왜소한 어깨에 통견 법의를 걸치고 있다. 가슴 이하는 불단에 가려 보이지 않지만 오른손을 가슴 앞에 놓고 보주를 들고 있다. 불신은 평면적이며 양감을 느낄 수 없다. 세부조각과 의습 표현이 정확하게 표현돼 있다.



|평택 서천사석조여래좌상|



평택 약사사 석조지장보살좌상 平澤 藥師寺 石造地藏菩薩坐像


지정번호 : 경기도 문화재자료 제169호(지정일 : 2013. 11. 12)

소 재 지 : 안중읍 용성3길 120-10



평택 약사사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원래 절에서 전해오던 보살상을 1945년 불사할 때 호분을 다시 칠한 것이다. 석조지장보살좌상은 아담한 체구에 조선 후기 유행하던 나한상의 전형적인 특징을 갖추고 있다. 보살상은 통견通肩 형식으로 법의를 착용했고 머리에는 두건을 쓰고 있다.



|평택 약사사 석조지장보살좌상|



무릎 위에 가지런히 올려놓은 오른손 위에는 연꽃으로 보이는 물건을 들고 있다. 지장보살은 석장錫杖이나 보주寶珠를 지물持物로 삼는 것이 일반적인데, 여기서는 연꽃을 들고 있다. 약사사 석조지장보살좌상과 같이 두건을 쓴 나한 모습의 지장상은 조선시대 말기 경상북도 일부 지역에서 확인되고 있어서 이 존상 역시 지장보살상일 것으로 추정된다.



주석

4) 평택시·경기도박물관,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9.
    경기도, 『경기문화예술총람』, 1990. / 평택시, 『평택군지』, 1984. / 평택시, 『송탄시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