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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시 향토유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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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시 향토유적은 현재 제8호까지 지정됐다. 관방유적(봉수대) 1, 개인 사당 3, 정문 1, 비각 1, 선사유적 1, 미술품(영정) 1점 등이다. 향토유적 1호인 포승읍 원정리 봉수는 조선시대 연안봉수沿岸烽燧 배치상황과 평택지역 군사통신 체계를 이해하는데 필요한 유적이다.
사당祠堂은 봉화 정씨·수성 최씨·고령 신씨 사당이 향토유적으로 지정됐으며, 정문旌門은 한온 장군의 충신정문, 미술품美術品은 신숙주 선생 영정과 감실주독, 비각碑閣은 조광조와 오달제 선생 유허비가 모셔진 충의각忠義閣이 지정됐다. 이들 유적은 평택지역의 역사·문화·인물을 이해하는데 필요한 문화유산들이다.



[평택시 지정 향토유적]5)


번호 명칭 위치 지정번호 지정일 시대
1
원정리 봉수대
포승읍 원정리 109-54
향토유적 제1호 1986. 3. 5 조선시대
2
정도전 선생 사당
진위면 은산길 80-15
향토유적 제2호 1986. 3. 5 조선시대
3
한온장군 충신정문
서탄면 금암리 594
향토유적 제3호 1986. 3. 5 조선시대
4
수성군 묘 및 사당
오좌동길 69-29(독곡동)
향토유적 제4호 1991. 7. 11 조선시대
5
충의각
이충동 산37-1
향토유적 제5호 1991. 7. 11 조선시대
6
원균사당
도일동 산84
향토유적 제6호 1991. 7. 11 조선시대
7
원정리 유적
포승읍 원정리 산109-430
향토유적 제7호 1997. 4. 26 구석기 ~
청동시대
8
신숙주영정 및 감실주독
청북면 원고잔길 20
향토유적 제8호 1997. 7. 24 조선시대


원정리 봉수대遠井里 烽燧臺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1호(지정일 : 1986. 3. 5)

소 재 지 : 포승읍 원정리 109-54



원정리 봉수대는 포승읍 원정 7리, 8리 일대의 봉화재(봉우재, 해발 83m) 정상에 있으며 동서방향을 장축으로 세장방형의 평면형태를 하고 있다.
단면형태는 상단지대와 하단지대를 갖춘 이중구조로 돼 있어 모양이 철자 형태를 띄고 있다. 둘레 길이는 하단대지 239m, 상단대지 138m이며, 하단은 토축土築, 상단은 석축石築으로 쌓았다.



| 원정리 봉수대 |



넓이는 하단 1,700㎡, 상단 700㎡이다. 내부 시설물은 봉돈으로 추정되는 원형돌무지 4개소, 건물지 1개소, 출입시설 3개소가 있다. 봉돈 추정 원형 돌무지는 지름 3.5m, 높이 0.3m 크기다. 봉수대는 조선시대 해안봉수로 팽성읍 망해산 봉수를 거쳐 북상하는 직봉直烽과 전북 옥구의 화산에서 갈라져 서천·보령·서산·당진을 거쳐 올라온 간봉間烽이 만나는 중요한 봉수였다.



정도전선생 사당(문헌사)鄭道傳先生 祠堂(文憲祠)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2호(지정일 : 1986. 3. 5)

소 재 지 : 진위면 은산길 80-15



고려 말 조선 초의 정치가이며 유학자인 정도전鄭道傳을 모신 사당이다. 본관은 봉화奉化, 자는 종지宗之, 호는 삼봉三峰이며 형부상서 운경云敬의 맏아들이다. 1392년 이성계를 추대해 조선 건국에 기여했다. 1394년 『조선경국전 朝鮮經國典』을 집필·편찬해 관제 등 모든 제도와 운영 방침을 제정하며 조선 법제의 근본을 이뤘다.



| 정도전선생 사당(문헌사) |



성리학적 이념과 새로운 국가를 건설하기 위해 군사·외교·행정·역사·성리학 등의 분야에서 폭넓게 활약했으나 제1차 왕자의 난 때 이방원에 의해 1398년 8월 26일 죽임을 당했다. 시호는 문헌文憲이다. 1912년 봉화 정씨 문중에서 양성현 성은면 산하리 287번지(현 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287번지)에 500여 평의 부지를 마련해 사우를 건립했다. 1930년 당초의 종가터(평택시 진위면 은산리 202번지)에 이축移築했고 1970년 증·개축을 했다. 사당 5칸, 외삼문 3칸, 홍살문紅箭門 3칸으로 맞배지붕의 한식 골기와를 얹은 사당이다. 사우 명칭은 시호를 따서 문헌사文憲祠라 했고 ‘유종공종儒宗功宗’이란 현판이 달린 사당 내에 위패와 영정이 있다. 매년 춘추로 제향을 올린다.



한온장군충신정문韓蘊將軍忠臣旌門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3호(지정일 : 1986. 3. 5)

소 재 지 : 서탄면 금암리 594



1555년(명종 10) 을미왜변 때 전라도 장흥부사長興府使로 재직 중 달량포達梁浦에서 전사한 한온(?∼1555)의 애국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워진 정문이다. 1696년(숙종 22) 충의忠毅라는 시호를 내리고 충신정문을 세우게 했다. 정문 규모는 정면 250cm, 측면 215cm다. 내부 왼쪽 현판에 ‘鐵腸石膽一心殉國(창자는 쇠붙이와 같고 쓸개는 돌과 같아라. 그 마음은 나라에 바쳤도다)’라는 기록이 있다.



| 한온장군충신정문 |



수성군 묘 및 사당隋城君 墓 및 祠堂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4호(지정일 : 1991. 7. 11)

소 재 지 : 오좌동길 69-29(독곡동)



조선 세조 때 무관이던 최유림崔有臨 (1426∼1471)은 본관이 수성이고 자는 자앙子昻이다. 1450년(세종 32) 무과에 급제해 고성현령·의금부진무 등을 역임했고 1455년(세조 1) 사직司直으로서 세조 즉위의 공으로 좌익원종공신佐翼原從功臣 2등에 책록됐다.



| 수성군 묘 |



1464 년(세조 10) 중추원부사로 진하사가 돼 명나라에 다녀왔다. 이듬해 전라도 처치사로 재직 중 앞서 명나라에 갔을 때 사무역私貿易을 했다는 혐의를 받아 고신告身을 박탈당하고 지방으로 중도부처中途付處 됐다. 1467년 이시애李施愛의 난이 일어나자 공현위장控弦衛將이 돼 충청도병 1,000명으로 석장현石場峴싸움에서 적장 김말손金末孫을 사로잡는 등 공을 세워 적개공신 3등에 책록됐다. 오위장에 임명되는 한편 수성군에 봉해졌으며 겨울에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임명됐다. 1471년(성종 2) 병을 얻어 고향인 독곡동으로 낙향해 별세했다. 성종이 안양安襄이라 시호하고, 자헌대부 병조판서를 증직하는 한편, 진위군 우동牛洞에 치장治葬하며 신도비와 사당을 세웠다. 본래 진위현 탄현면 오좌동(현 독곡동)에 있었고 본관 5평 6홉, 외삼문 2평 5홉이었는데 10여회 중수했다.



| 수성군 사당 |



1979년 문중에서 다시 신축해 1980년 4월 철거하고 구 사당 주위의 종중산宗中山 182평을 대지로 조성했으며 본관 11평 1홉, 외삼문 5평, 담장 110m 규모로 1983년 6월 준공됐다. 사당 옆에 세워진 신도비는 본래의 것이 마멸돼 1972년 다시 세웠다.



충의각忠義閣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5호(지정일 : 1991. 7. 11)

소 재 지 : 이충동 산 37-1



충의각은 정암 조광조와 추담 오달제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세운 각으로 각 안에 유허비가 있다. 비신 55×16×123㎝, 비대 67×49×15㎝로 유허비 상부에는 ‘송장松莊’이라는 글씨가 전서체로 적혀있고 그 아래 조광조와 오달제의 유허지임을 알리는 내용이 있다.



| 충의각 |



1800년 당시 진위 유림에서 조광조·오달제 선생의 자취가 있음을 길이 전하고자 나라에 청해 허가를 얻었다고 전한다. 비의 위치는 오달제 선생의 옛 집터가 있는 산 윗부분에 해당한다. 비는 1950년대까지 길 옆에 방치돼 있었으나 1960년대부터 동령마을 주민들이 보호·관리했으며 1990년 송탄문화원이 기와를 보수하고 단청을 했다. 이충동 택지개발로 2005년 12월 15일 현재의 자리에 옮겨 세웠다.



원균 사당元均 祠堂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6호(지정일 : 1991. 7. 11)

소 재 지 : 도일동 산 84



임진왜란 당시 삼도수군통제사三道 水軍統制使를 지내다 전사한 원균을 모신 사당이다. 1604년 이순신·권율과 함께 선무공신宣武功臣 1등으로 책록돼 의정부 좌찬성 겸 판의금부사에 추증되고 원릉군原陵君에 추증됐다. 국가에서 사당을 세워 후손에게 제향토록 했 으며 본래의 건물은 경기도기념물 제 57호인 묘역 앞에 있었으나 사당이 낡아 현재의 위치에 옮겨 세웠다. 매년 음력 7월 15일에 제사를 지낸다. 1991년 7월 향토유적으로 지정된 뒤 1992년 송탄시에서 수리 및 개축했다. 규모는 대지 50여 평에 사당 본채 11평, 외삼문 5평의 기와집이다.



| 원균 사당 |



원정리 유적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7호(지정일 : 1997. 4. 26)

소 재 지 : 포승읍 원정리 산 109-430



원정리 멍거니산에 있으며 1995년 평택항 조성사업 과정에서 대규모 패총 유적이 확인돼 1년간 발굴조사했다. 신석기시대 중기 이후 패총이 형성된 것으로 보이며 조선시대 온돌집자리 유구 20여기가 발견됐다. 집자리 내부 퇴적토에서 상평통보 한 점이 출토됐다.
현재 멍거니산은 개발돼 선박 접안시설 및 물류기지로 이용되고 있으며 온돌집자리터는 이전·보존돼 있다.



| 원정리 유적 |


신숙주 영정影幀 및 감실 주독龕室 主櫝


지정번호 : 향토유적 제8호(지정일 : 1997. 7. 24)

소 재 지 : 청북면 원고잔길 20



조선 전기 정치가·학자인 신숙주 영정과 감실 주독으로, 고령 신씨 사당에 함께 보관돼 있다. 영정 크기는 166cm×98cm로 명나라 화공에 의해 제작됐다고 한다. 20년 뒤 개장改粧한 이모본移模本이 구봉령당九峰靈堂(충북 청원군 가덕면 인차리 13)에 보물 제613호로 지정됐다.
고령신씨 사당에 원래 있던 것은 망실亡失돼 1890년 구봉령당본을 이모한 것이다. 구봉령당본과 화폭재료만 다를 뿐 의자에 앉아 있는 자세나 복식표현이 매우 유사하며 조선전기에 유행했던 공신도功臣圖 형식을 따르고 있다.
감실 주독은 신주를 모셔 두는 궤이며 가로 30cm, 세로 45cm로 밤나무로 만들어졌다.



| 신숙주 영정(影幀) |


주석

5) 평택시·경기도박물관,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1999.
    경기도, 『경기문화예술총람』, 1990.
    평택시, 『평택군지』, 1984.
    평택시, 『송탄시사』, 199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