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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개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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선사시대란 인류가 문자를 쓰기 시작하면서 기록을 남겼던시대(역사시대) 이전의 시기를 말한다. 이러한 선사시대는 일반적으로 구석기시대, 신석기시대, 청동기시대로 구분하며 기록 이외의 유물과 유적만을 기반으로 당시의 사회적·경제적·문화적 모습 복원이 가능하다.
우리나라에는 대략 60만 년 전부터 인간이 살았던 것으로 밝혀지고 있다. 그리고 약 1만 년 전에는 신석기인들이 살기 시작했으며 기원전 1,000년 전 무렵에는 청동기를 사용하는 사람들이 등장했다. 구석기시대는 무리를 지어 식량이 있는 곳을 찾아 이동생활을 했다. 농경과 더불어 정착 생활이 시작된 것은 신석기시대부터였다. 신석기인들은 농경과 목축을 하면서 주로 바닷가나 큰 강 유역에서 정착했으나, 아직까지는 채집경제가 주류를 이루었던 시기였다. 그들이 남긴 조개더미1)는 해안가에서 살았던 신석기인들이 식량의 상당 부분을 채집을 통해 얻었음을 증명해 준다.
청동기시대에 비로소 본격적인 농경 생활이 이뤄졌고, 농경의 발전은 사람들에게 경작지를 충분히 확보할 수 있는 구릉으로의 이동을 요구했다. 이전보다 지대가 높은 곳에 정 착한 청동기인들은 본격적으로 땅을 일구기 시작했는데 밭작물이 주로 재배되었을 것으로 추정된다.
동쪽에서 뻗어오는 차령산맥의 완만한 구릉과 진위천, 안성천 그리고 황구지천을 따라 서해까지 펼쳐진 벌판으로 이루어진 평택 지역은 기후가 온화하고 산세가 험하지 않아 선 사시대 사람들의 수렵이나 어로 활동, 그리고 원시적인 농사를 짓는 데도 큰 어려움이 없었을 것으로 생각된다. 또 북쪽의 화성이나 동쪽의 안성 및 남쪽의 아산과는 지형적인 막 힘이 없으므로 평택의 선사문화는 이러한 인근 지역과 밀접한 관련 속에서 발전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발굴 및 지표 조사를 통해 나타난 평택의 선사시대 유적은 우리나라 전역에 서 발견된 구석기∼청동기시대의 유적이 갖는 특징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는다.
평택에서 선사시대 유적이 발견된 것은 비교적 최근의 일이다.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하기 전 현덕면 도대리와 팽성읍 두정리 등에서 간석기와 화살촉을 비롯하여 돌검·민무늬 토기 등이 수습됐고 고덕면 방축리와 팽성읍 석근리, 오성면 양교리에서도 청동기시대의 유물들이 발견되면서 이들 지역의 선사유적 분포 가능성을 강하게 시사했다. 본격적으로 선사유적이 확인된 것은 서해안고속도로나 주로 포승 국가 산업단지, 국도 건설공사, 택지조성 등 구제 발굴들로 말미암아 시작됐다.
지금까지 밝혀진 선사시대 유적은 대개 진위천을 중심으로 서해안과 아산만 쪽인 평택 서쪽지역에 주로 분포하고 있다. 평택지역의 유적발굴은 산업단지나 도로 개설 등을 계기 로 이뤄졌는데, 지금까지의 공사가 대부분 진위천의 서쪽에서 이루어진 결과라고 생각된다. 평택은 전체적으로 서해안과 가깝고 나지막한 구릉을 이루고 있어서 본격적인 발굴이 이 루어진다면 선사시대 유적확인은 늘어날 수 있다. 안중읍 대반 6리에서 시작해 송담리·현화리·운정리를 거쳐 포승읍 석정리·희곡리에 이르는 지역은 얕은 구릉성 지역의 남사 면으로 연이어 있으면서 구석기가 발견되고 있다. 특히 평택 용이동유적2)과 마두리유적3)에서 제4기 갱신세층이 광범위하게 분포하고 구석기 유물도 발견됨에 따라 경기남부 다른지역보다 구석기 문화층이 넓게 확인될 가능성이 높다.
청동기시대 유적은 현화리유적4)을 시작으로 원정리유적, 지제동유적5), 소사동유적6), 두릉리유적7), 남산리유적8), 양교리유적9), 토진리유적10), 소사벌유적11), 방축리유적12), 당현리유적13), 양교리 산41-1번지유적14)등 많은 지역에서 확인된다. 구릉을 중심으로 발견되면서 전체적으로 산록의 남사면南斜面에 위치해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세를 보이고 있어 선사인이 살기에 좋은 입지 조건을 가지고 있다.
평택 지역에서 지금까지 발견된 선사시대 유적을 정리하면 아래 표와 같다. 현재 평택은 도로의 개설과 더불어 여러 지역에 산업단지 및 택지의 조성 등이 빠르게 진행되고 있으므로 계획적인 발굴이 시급히 요구된다.



[평택 지역의 선사시대 유적]


시대 위치 발굴 연도 조사 기관 비고
구석기
오성면 양교리 오봉산 남쪽 끝자락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포승읍 희곡리
1992~1993
1995
국민대학교 박물관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지표조사
발굴조사
포승읍 석정리 114-8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포승읍 홍원리
1994 단국대학교 중앙박물관 발굴조사
현덕면 운정리 6-10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안중읍 대반6리 408
1995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지표조사
안중읍 용성리 비파산성 내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안중읍 용성리 711-11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안중읍 송담리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안중읍 현화리 산157,129,138,141 일대
1995~1996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발굴조사
신석기
포승읍 원정리 산109-403 일대
1994~1995 아주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청동기
지제동 산44-7, 18-6
1997
1999
세종대학교 박물관 시굴조사
팽성읍 석근리
1992 국립중앙박물관 지표조사
진위면 견산리 진위사 북쪽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진위면 견산 4리 견산리 산성 남사면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서탄면 수월암1리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서탄면 내천2리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오성면 안화리
1997 세종대학교 박물관 시굴조사
오성면 양교 5리 산30
1983 이계윤 지표조사
청북면 후사리 무성산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청북면 백봉리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포승읍 원정리 산109-403 일대
1994~1995 아주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현덕면 기산2리 옥녀봉 남사면
1998 경기도 박물관 지표조사
안중읍 대반 6리 408
1995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지표조사
안중읍 현화리 산127,129,138,141 일대
1995~1996 충북대 선사문화연구소 발굴조사
고덕면 방축리
2003 세종대학교 박물관 발굴조사
고덕면 두릉리 산59-6 일원
2005 중앙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소사동 일원 122-1 일원
2004~2006 고려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오성면 양교리 903 일원
2005~2008 고려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팽성읍 남산리 산27-9 일원
2008 중앙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오성면 양교리 산41-1
2008~2010 겨레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청북면 토진리 산29-1
2010~2011 겨레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고덕면 당현리 575외 일원
2009~2010 가경문화재연구원 발굴조사


주석

1) 한자로 옮겨 ‘패총’(貝塚)이라고 부르기도 하는 조개더미 유적은 선사시대 사람들이 바닷가나 강가에 버린 조가비·짐승뼈 등을 비롯한 생활 쓰레기들이 쌓여서 이루어진 유적이다. 조가비뿐만 아니라 살림살이에 썼던 토기·석기와 같은 연모와 치레걸이·예술품 등 다양한 유물들이 함께 발견됐다. 신석기시대의 조개더미 유적은 바닷가와 섬지방에 많이 남아있어 그 당시 해안 문화를 이해하는 데 많은 도움을 주고 있다. 이 당시 사람들은 먼 바다까지 나갔으며, 이에 따라 배 만들기와 항해술도 발달했을 것으로 추정된다.

2) 한국문화재보호재단, 『평택용이동 유적』, 2011.
3) 한국문화유산연구원, 『평택 서탄면 마두리 194-9번지 공장신축부지유적발굴조사 약보고서』, 2008. 9.
4) 충북대학교 선사문화연구소, 『平澤玄華里遺蹟』, 1996.
5) 세종대학교박물관, 『平澤芝制洞遺蹟』, 2000.
6) 고려문화재연구원, 『平澤素沙洞遺蹟』, 2008.
7) 중앙문화재연구원, 『平澤杜陵里遺蹟』, 2005.
8) 중앙문화재연구원, 『平澤南山里遺蹟』, 2008.
9) 고려문화재연구원, 『平澤梁橋里遺蹟』, 2010.
10) 기전문화재연구원, 『平澤土津里遺蹟』, 2006.
11) 중앙문화재연구원, 『平澤소사벌遺蹟』, 2011.
12) 세종대학교박물관, 『平澤防築里』, 2003.
13) 가경고고학연구소, 『평택당현리유적Ⅰ·Ⅱ』, 2012.
14) 겨레문화유산연구원, 『평택양교리산1-1 유적』,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