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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제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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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 지제동之制洞146)


지제동은 이마트 입구에서 태미산과 울성마을에 이르는 큰 마을이다. 구대·당현·새터·울성과 같은 자연마을이 있다. 마을면적이 넓다보니 지제동의 자연마을들은 역사적으로 통합과 분리를 반복했다. 이 지역은 고려시대 영신현이었다. 조선후기에는 성남면 지제리와 울성리로 구분됐고, 1914년 지제리(동)가 됐다. 지제동의 마을들은 크게 지제芝制와 울성蔚城으로 구 분된다. 통상 지제芝除라고 할 때는 구대舊垈·당현·새터만을 의미한다. 조선 후기에 편찬된 『진위현읍지邑誌』에는 지제芝除라는 지명이 지제紙除로 기록됐다. 종이를 생산했던 마을에서 흔히 볼 수 있는 지명이다. 지제동에서 가장 먼저 생긴 마을은 당현堂峴이다. 당현에는 일제 때까지 고개마루에 서낭당이 있어 ‘당고개’로도 부르고 ‘당재말’로도 부른다. 당현은 다시 우물말·북우물·당현으로 구분된다. 우물말은 마을이 형성될 때 공동우물이 있어서 만들어진 이름이고, 북우물은 북쪽 계곡에 건수가 나오는 우물이 있다해서 유래됐다.


구대舊垈의 우리말은 구터말이다. 구터말이란 옛터라는 의미다. 구대마을은 옆에 새터말이 분동되면서 ‘옛마을’이라는 의미로 사용됐을 것이다. 구대와 당현은 단양우씨·연안차씨·용인이씨가 대성大姓이다. 당현에 처음 입향한 단양우씨이고 이후 처족妻族관계에 있었던 연안 차씨도 들어왔다. 3백여 년 전에는 용인이씨가 들어와서 구대마을에 자리 잡았다


울성蔚城147)조선후기 진위현 성남면 지역이었고, 갑오개혁(1895) 후 병파면과 통합되면서는 병남면 울성리로 편제됐다. 1914년 구대·당현과 통합되면서 지제동에 편입됐고 ‘행정 리’의 지위를 상실했다. 울성은 태미산을 끼고 큰말과 작은말로 이뤄졌으며 전주이씨가 수백 년을 살아왔다. 전주이씨 이전에는 파평윤씨가 거주했지만 현재는 모두 이거하고 없다.



지제동 구대와 새터마을(2013)

| 지제동 구대와 새터마을(2013) |





(김해규_평택지역문화연구소장/한광중학교 교사)



주석

146) 우동천(77세)외 6인, 2003년 1월 29일 구대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
147) 이수훈(71세), 이종태(69세), 2010년 9월 23일 울성마을 경로당 앞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