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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근대 이후 평택의 금융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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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주적인 근대화를 꿈꾼 대한제국은 1905년 ‘한성공동창고’라는 금융기관을 설립했다. 한성공동창고는 기존에 사용되던 조선 엽전 통용을 금지한 일본의 조치로 인해 상인들이 입는 피해를 최소화하고자 상인들의 물품을 담보로 자금을 융통시키기 위해 설립됐다. 한성공동창고는 창고업과 물품담보대출을 함께 하는 사실상의 금융기관의 성격을 가지고 있었다. 1907년 한성공동창고의 지점인 평택출장소가 평택역내에 설치됐다. 비교적 이른 시기에 금융기관이 들어선 것은 당시 평택역을 중심으로 물류의 움직임이 활 발했음을 말해준다. 1912년 한성공동 창고는 대한천일은행과 함께 조선상업 은행으로 통폐합됐고 평택지점은 그대로 유지됐다. 해방 이후 조선상업은행은 한국상업은행으로 상호를 변경했고, 1954년 지금의 자리로 옮겼다. 현재 우리은행 평택지점(통복동)이다.1) 해방과 함께 평택도 본격적으로 국내자본을 통한 금융업이 되살아나게 됐다. 1956년 5월 주식회사 농업은행이 발족됐고, 1957년 발족된 농업협동조합은 1961년 농업은행과 통합돼 농촌지역 금융의 구심점이 됐다. 이후 농협은 상업은행과 더불어 지역 금융을 주도했다.



| 한성공동창고 관계서류 |


| 우리은행 평택지점(통복동) |



1970년대부터 산업구조가 다양화되기 시작하자 금융유통구조도 변화했다. 평택에는 은행 6개소, 지역단위농협 5개소, 신용금고 5개소, 새마을금고 등이 설치됐으며 각종 신탁 금융, 증권, 보험회사 등도 설립됐다.
1984년 편찬한 『평택군지』에는 1981년 평택의 금융기관별 예·대출금 현황 자료가 있다.
당시 은행은 상업은행, 경기은행, 한일은행, 중소기업은행, 국민은행, 농협 등이었다. 이중에서도 상업은행과 농협은 평택에서 차지하는 예·대출금 비중이 상당히 큰 것으로 나 타난다. 평택군 농협지부의 경우 1981년도 7개 은행 점포의 금융 거래 총액 중 예금 32%, 대출 54%를 차지하고 있다.



[1981년도 금융기관별 예·대출금 현황]

(단위 : 천 원)

구분 예금(A) 대출금(B) A:B 대비(%)
34,798,982 21,354,093 61.4
상업은행 평택지점 4,897,604 1,987,404 40.9
경기은행 2,759,055 1,150,939 41.7
한일은행 4,640,733 1,305,778 28.1
중소기업은행 1,800,000 1,823,977 101.3
국민은행 송탄지점 4,101,349 2,795,141 68.2
상업은행 송탄지점 5,512,841 734,403 13.3
평택군 농협지부 11,127,400 11,456,450 103.0


1992년 24개소이던 평택지역 은행점포는 3개 시·군이 통합되던 1995년에 35개소, 1997년 43개소까지 증가했다. IMF(국제통화기금) 이후 1999년 평택시의 은행점포는 30 개소로 감소했다. 그러나 2004년부터 은행점포 수가 다시 증가해 2011년 현재 평택시의 은행점포는 44개소로 1997년 12월 기준으로 IMF 직전 수준을 넘어서고 있다.2)



[금융기관 현황]

(단위 : 개소)

연도 시중은행 특수은행 한국
산업
은행
조흥 우리 제일 국민 한국
외환
신한 한국
시티
하나 기업 농협
중앙회
1993 33 4 2 1   1 0 3   3 7 1
1996 41 5 4 3 2 3 0 4   3 8 1
1999 30 4 4 1 2 2 2 2 1 3 7  
2002 31 4 3 2 4 2 2 2 1 3 8  
2005 38 5 5 3 5 2 2 2 1 4 8 1
2008 44   6 3 7 2 7 2 2 5 9 1
2011 44   6 3 7 2 6 2 2 5 10 1


[예금성질별 분석]

(단위 : 10억 원)

연도 예금총계 저축성예금 요구불
예금
대출 어음교환
정기예금 정기적금 저축예금 장수(천장) 금액 부도율(%)
1996 7,806.6 1,074.9 887.2 1,197.7 1,718.3 7,033.8 11,399.3 9,976.7 0.6
1999 12,951.0 4,599.3 824.5 3,939.9 2,026.9 12,617.7 10,247.5 8,499.9 0.2
2002 2,075.3 803.5 142.5 492.4 238.4 2,337.2 12,236.3 10,323.0 0.3
2005 2,642.3 876.5 126.9 603.6 538.0 3,569.8 10,869.5 7,662.5 0.4
2008 3,270.0 1,575.5 118.4 564.9 444.3 5,782.4 9,583.2 6,574.0 0.4
2011 4,094.7 1,834.7 158.5 782.3 627.6 7,143.9 5,546.2 4,726.3 0.7


IMF체제는 예금성질에도 많은 변화를 가져왔다. 우선 저축이 전체적으로 크게 감소했다. 1999년 129,510억 원에 달했던 평택의 예금 총액은 1년 만에 15,677억 원으로 87%나 감소했다. 2011년 현재도 1999년 당시의 약 32% 정도밖에 미치지 못하고 있다. 저축성예금 내에서의 예금성질도 변화를 보인다. 1990년대 말 전체 예금 중 큰 비중을 차지했던 요 구불예금과 저축예금, 정기적금은 2000년대에 들어 비중이 감소했다. 반면 정기예금은 액수와 비중이 증가해 2011년 현재 총 예금액의 54%를 차지하는 등 시중 자금이 정기예금으 로 몰리는 현상을 보이고 있다.



[예금 및 대출 현황 - 예대율]

(단위 : 10억 원)




대출도 IMF 위기로 인해 크게 감소했다. 감소했던 대출은 2000년 이후 다시 증가하고 있는데 증가 폭은 예금액 증가폭보다 훨씬 크다. 예금 가운데 대출금이 차지하는 비율 을 계산해 금융기관의 유동성을 평가하는 예·대금비율貸金比率(예대율)은 2011년 현재 174.5%에 이른다.3) 어음교환은 2000년대 초반 이후 발행량과 발행금액이 지속적으로 감 소하는 추세다. 다만 부도율은 IMF 이전 급격히 높아졌다가 2000년대 내내 0.4%를 넘지않는 수준에서 유지됐다. 그러나 2010년 부도율이 0.8%, 2011년에는 0.7% 상승한 상태 로, 같은 해 경기도 전체 평균인 0.26%와 0.19%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이는 지역 사업체들의 경제 여건이 좋지 않음을 보여준다. 금융업의 활성화는 경제발전에 필수적이 다. 현재 평택의 금융업은 IMF라는 역경을 이겨내고 성장하고 있다는 점에서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주석

1) 평택시민신문, 「1907년 평택시 최초의 근대식 금융기관 문 열어」, 2006.8.9, 이철형 기자
2) 평택시, 『평택군지』, 평택군지편찬위원회. 1984.
      평택시, 『평택시 통계연보』, 2000, 2006, 2012.