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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인좌의 난(무신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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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란을 제외하고 조선시대에 진위현과 관련해 일어난 가장 큰 사건은 1728년 3월 ‘이인좌李麟左의 난’, 즉 무신난戊申亂이다. 이인좌의 난은 경종의 독살설이 직접적인 발단이 된 것으로 남인, 소론의 강경파, 이인좌, 정희량鄭希亮이 중심이 돼 영조와 노론을 제거하려고 시도했던 반란이다. 1728년 3월 15일 이인좌의 무리가 청주성을 점령하면서 시작돼 한 달 동안 계속되다가 결국 관군에 진압됐다.
특기할 만한 것은 삼남과 경기·서울 등 전국의 양반들이 연루되고, 도적 집단까지 관련되는 등 참여 폭이 광범위했다는 점이다. 특히 진위·양성·용인 등 경기남부지역과 청주 부근의 양반들은 청주성을 점령한 뒤부터 죽산에서 오명항吳命恒이 이끄는 관군에 패할 때까지 반란 세력의 주축을 이루었다. 난에 가담한 인물들은 물론 상대적으로 많은 인물이 가담했던 진위현이 반란의 중심지로 지적돼 10년 간 읍호邑號가 강등되는 처벌을 받았다.
난의 배경과 전개 과정을 살피고 그 과정에서 중심이 돼 활동한 평택지역 인물들의 동향과 적극적으로 가담하게 된 원인을 평택의 지역적 특징과 함께 살펴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