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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지역의 청동기문화는 최근 발굴조사로 많은 유적들이 확인됨에 따라 중부지역 청동
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역할을 담당하고 있다. 발굴조사로 확인된 청동기시대 유적은 현화
리유적10)·원정리유적·지제동유적11)·소사동유적12)·두릉리유적13)·남산리유적14)·양교
리유적15)·토진리유적16)·소사벌유적17)·방축리유적18)·당현리유적19)·양교리 산41-1번
지유적20) 등이 있다.
현화리유적은 남북방향의 구릉지대에 위치한 주거지 5기를 확인했는데 평면은 모두 장
방형이고 수혈의 깊이는 지형을 고려해 조성됐다. 유물 중에는 공렬문토기와 구순각목문
토기가 함께 나타나며 두형의 적색마연토기도 있다. 주거지에서 출토된 목탄방사성탄소연
대측정을 통해 기원전 10세기라는 결과를 얻어냈다. 이 연대 값은 우리나라 청동기시대 문
화연구에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 현화리유적 1·2호 주거지 평면도 |
| 현화리유적 발굴 모습도 |
지제동유적에서는 주거지 8기와 움(수혈유구) 4기가 확인됐다. 주거지에서 화재의 흔적
은 발견되지 않았으며 완전한 형태의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이런 점은 일정기간 동안
주거지에서 생활하다가 다음 주거공간으로 이동하면서 자연스럽게 폐기됐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짐작된다. 지제동유적은 한강이남지역과 중부지방에서 조사된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무문토기 비교연구에 큰 도움이 된다. 특히 경기남부지역 선사문화 이해의 중심적인 위치를 점한다고 할 수 있다. 8기의 주거지는 물줄기에 의해 대부분 유실됐고 형태를 알 수 있는 것은 A유적의 2호 주거지뿐이다. 이런 유구에 비해 유물은 무문토기 저부편 200여 점, 석기류 110여 점 등 많은 양이 출토됐다. 이는 오랜 기간 동안 청동기인들이 대단위로 거주했음을 증명해 준다. 출토된 공열토기·환상석부 등은 중부지역의 청동기문화 전파과정을 이해할 수 있는 좋은 자료로 평가된다. 동시에 경기남부지역에서 선사고고학의 조사가 미비했던 한계성을 극복시켜 주는 원동력이 됐으며 특히 평택지역의 선사시대 문화상을 파악할 수 있는 중요한 자료를 제공하는 계기가 됐다.
원정리유적은 구연부 단면이 원형과 삼각형인 점토대토기의 구연부편과 축약된 외형의 저부편·타제 괭이머리·마제석부·석촉·석겸편 등이 출토됐다. 안화리에서는 진위천의 지류인 관리천을 따라 남동쪽으로 전개되는 논 가운데 농로에서 무문토기가 수습됐다. 무문토기편은 백봉리·기산리·무성산·자미산 등지에서도 발견되고 있다. 이들 유적은 인근지역보다 비교적 높은 구릉지대에 입지하는 공통점이 있다.
소사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81기가 발굴 조사돼 평택지역 청동기시대 연구의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다. 주거지 배치양상은 지점별로 약간 상이하게 나타나는데 가지점과 다지점은 구릉 정상부의 평탄면과 남사면 그리고 동사면부의 기반토인 풍화암반층을 굴토해 조성했다. 전체적인 배치양상은 ‘ㄴ’자 형태 가지점과 ‘ㅡ’자 형태 다지점을 보이고 있다. 관련 유물로는 이단병식석검·삼각만입 및 이단경식석촉·합인과 편평편인석부·반월형석도의 석기류가 있으며, 토기류는 기형상 심발형과 호형이 모두 확인된다. 구연부 문양은 이중구연·이중구연단사선·공렬·구순각목·구순각목공렬 등의 복합문이 주류를 이룬다. 소사동유적은 청동기시대 전
기 전반부터 후기 후반까지의 주거지
가 확인되고 있으나 절대연대 상 B.C
900~700년에 해당하는 청동기시대
전기 후반의 주거지들은 확인되지 않
았다. 청동기시대 전기 전반과 중반까
지 약 400년간 취락이 지속되다가 전
기 후반 200년간은 어떤 연유에서인지
공백기가 이어진다. 이후 후기 전반의
약 B.C 700년에 변화된 형태의 주거
양식으로 나타나 B.C 300년을 하한으
로 하는 후기 후반까지 변화·정착·
성행·쇠퇴하면서 지속된 것으로 파악
된다.
| 소사동유적 유적공원 및 발굴 전경(고려문화재연구원) |
양교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44
기가 확인됐는데 평면 형태는 세장방
형·장방형·방형·원형 등 다양한 형
태로 확인된다. 주거지는 전기 중반부
터 후기 전반에 이르는 것으로 확인되며, 가락동식·역삼동식에서 송국리식으로 변화하는
과도기적 단계의 양상을 보인다. 이 과도기적 모습은 전기 후반(B.C 900~700)~후기 전
반(B.C 700~500)으로 넘어가는 과정에서 주로 나타난다. 이로써 양교리 유적은 이 시기
의 변화상과 정착·성행·쇠퇴까지의 단계를 잘 보여주고 있다.
두릉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가 조사됐으며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구릉 남동쪽 사
면 상단부에서 확인됐다. 잔존하는 주거지의 평면 형태는 말각방형이며 주거지 형태로 보
아 청동기시대 전기에 편년할 수 있을 것으로 판단된다.
남산리유적은 발굴조사 결과 청동기시대 주거지 1기 유구가 확인됐다. 평면 형태로 보아
송국리형주거지와 관련돼 청동기시대 중기로 판단된다. 유물은 무문토기·석부·석촉 등
이 출토됐다.
양교리 산41-1번지 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16기가 확인됐는데 해발 36~42m 사이
야트막한 구릉 정상부와 사면 부에 위치하며 평면 형태는 세장방형·장방형·방형으로 나
뉜다. 주로 세장방형 주거지가 중심이 되는 시기와 방형 주거지가 중심이 되는 두시기로
구분 되며, 청동기시대 전기에서 중기까지 이어진다고 볼 수 있다. 내부시설은 노지·저장 공·주혈·벽구·작업공·수혈·소혈 등이 조사됐다. 출토유물은 토기류가 구연부편 및 저부편을 중심으로 확인됐으며 문양은 주로 구순각목·구순각목+ 공렬·공렬이 시문돼 있다. 석기류는 석검·석촉·석부·석착·석도·숫돌 등이 출토됐다.
소사벌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10기가 조사됐다. 세장방형의 무시설식 노지를 갖춘 청동기시대 전기 역삼동 유형으로 소사동유적의 청동기시대 주거지와 함께 평택지역의 청동기시대 전기 문화상을 살펴볼 수 있는 좋은 자료를 제공하고 있다.
토진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주거지 9기가 조사됐으며 해발 29∼39m 사이 구릉 정상부와 서쪽 사면 부에 분포한다. 청동기시대 주거지는 세장방형·방형·원형으로 세분되며 원형주거지는 중심 2주공에 작업공을 갖추거나 4주식 주공이 확인된 송국리식 주거지에 해당한다. 세장방형 주거지는 구순각목공렬토기 중심에 3m 내외의 폭을 띠는 등 세장방형 주거지 성행기에 해당하는 기원전 9~10세기로 추정된다.
방축리유적은 청동기시대 유구로 주거지 7기가 확인됐다. 주거지는 대부분 세장방형 및 장방형 주거지로 그 중 최대 25m 이상 규모가 큰 주거지가 확인됐으며 주거지 내부시설은 노지·저장공·주공·벽구 등이 확인됐다. 토기류는 발형·호형토기가 출토됐고 구연부의 문양은 공열문·구순각목문이 확인된다. 석기류는 합인석부·석촉·갈판 등이 확인됐다. 평면형태의 경우 대형의 장방형·대형의 세장방형·중형의 장방형·소형의 (장)방형으로 변화하며 이후 휴암리 유형의 소형 방형으로 변화되는 것으로 보아 청동기시대 전기 중반~후반에 이르는 시기에 해당하는 것으로 보인다.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청동기시대 생활유적은 소사동의 81기를 중심으로 양교리 44기 등 170여 기가 조사돼 대규모 청동기시대 군락지를 형성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평택에 청동기시대 유적이 매우 다양하게 확인 되는 것도 이러한 입지조건을 갖추고 있기 때문이다.21)
| 방축리 발굴 유물(국립중앙박물관 소장) |
주석
10) 『平澤玄華里遺蹟』, 충북대학교 선사문화연구소, 1996.
11) 『平澤芝制洞遺蹟』, 세종대학교박물관, 2000.
12) 『平澤素沙洞遺蹟』, 고려문화재연구원, 2008.
13) 『平澤杜陵里遺蹟』, 중앙문화재연구원, 2005.
14) 『平澤南山里遺蹟』, 중앙문화재연구원, 2008.
15) 『平澤梁橋里遺蹟』, 고려문화재연구원, 2010.
16) 『平澤土津里遺蹟』, 기전문화재연구원, 2006.
17) 『平澤소사벌遺蹟』, 중앙문화재연구원, 2011.
18) 『平澤防築里』, 세종대학교박물관, 2003.
19) 『평택당현리유적Ⅰ·Ⅱ』, 가경고고학연구소, 2012.
20) 『평택양교리산41-1 유적』, 겨레문화유산연구원, 2012.
21) 청동기시대의 입지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식수와 경지 확보가 유리한 지형이다. 산지를 제외한 상기의 입지는 모두 식수와 경지확보에 매우 유리한 지형적 입지를 보인다. 특히 산록 사면은 몇 개의 경사 변환점을 갖고 있어 서 지하수가 용출될 뿐 아니라 지하수 대가 높고 풍부해 취수에 편리한 장소로 알려져 있다. 여기에 양지가 될 경우 일조량이 많고 겨울철 북서계절풍을 막아주므로 보온에 알맞은 장소가 된다. 이밖에도 외적침입에 대한 조망·방어·연료·채집대상의 인접·저습지형과 다른 건조한 지반조건·자연재해를 입지 않는 안전성 등 거주조건에 유리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