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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인돌 문화22)
청동기시대 대표적인 무덤은 고인돌23)이다. 고인돌은 전 세계적으로 약 6만여 기가 분포
해 있으며 우리나라에는 남·북한 모두 합쳐 3만 기 정도가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
일본·유럽 등에 남아있는 수천여 기와 비교하면 한반도는 고인돌의 중심 분포지역이라
볼 수 있다.
고인돌이 분포하는 곳은 하천가의 평지나 구릉, 고갯마루와 산기슭 등 인간 생활과 밀접
한 곳이 대부분이다. 무거운 돌을 운반해야 하기 때문에 대부분 바위를 구하기 쉬운 곳에
위치하고 있다. 특히 하천변에 인접한 평야지역에 많은 수의 고인돌이 밀집돼 있는데 고인
돌 문화는 농경중심사회와 연결된다고 볼 수 있다.
고인돌의 형태는 크게 3가지로 분류하는데 탁자식과 바둑판식(기반식), 그리고 개석식
(무지석식)이다. 탁자식은 판판한 4개의 받침돌을 세워서 땅위에 네모꼴 무덤방을 만들고
그 위에 덮개돌을 올려놓는 형식이다. 바둑판식(기반식)은 땅위에 놓인 3~4개 또는 그 이
상의 받침돌이 덮개돌을 받치고 있는 것으로 무덤방을 땅속에 마련한다. 개석식은 땅위에
커다란 덮개돌만 드러나 있는 것으로 덮개돌과 무덤방 사이에 받침돌을 두지 않아 무지석
식으로도 불린다.
경기도의 고인돌 중 형식을 알 수 있는 것은 423기다. 이중 평택지역 고인돌은 모두 7기
로 내천리 1기, 수월암리 4기, 동천리 1기, 양교리 2기가 확인됐다.
내천리 고인돌은 1999년 경기도박물관에서 진행한 평택시 문화유적자료조사 당시 1기가
보고 됐으나 2003년 세종대학교박물관의 시굴조사를 통해 고인돌이 아닌 것으로 판명됐
다. 기존의 고인돌 외에 또 다른 1기가
발견됐는데 이 역시 본래의 자리에서
이동된 것으로 판단된다. 추가로 발견
된 고인돌은 화강편마암질로 평면 형
태는 장방형이며 규모는 170×140×
80㎝정도다.
수월암리 고인돌은 4기가 확인됐는
데 당고개 정상부 북쪽능선을 따라 20m 간격을 두고 1호와 2호가 위치하며, 이곳에서 서남쪽으로 약 100m 가량 떨어진 곳에 3호와 4호가 위치하고 있다.
형태는 개석식으로 보이며 재질은 화강암질이다. 크기는 220∼290㎝×177∼250㎝×50∼60㎝정도이며, 장축방향은 남-북을 향하고 있다.
동천리 고인돌은 해발 50m지점에 위치하며 1기가 확인됐다. 형태는 개석식 고인돌로 보이며 재질은 화강암질이다. 평면형태는 장방형으로 덮개돌의 규모는 360×220×80㎝정도다. 장축방향은 동-서를 향하며 측면으로 치석한 흔적이 일부 확인된다.
양교리 고인돌은 해발 80m의 구릉정상부에 위치하며 총 2기가 확인됐다. 1호는 개석식으로 덮개돌 크기가 175×120×55㎝ 정도이며 화강암질을 사용했다. 2호 또한 개석식으로 부채꼴 모양이며 장축은 남북방향으로 크기는 160×110×50㎝이다.
평택지역의 고인돌 7기는 해발 50~90m의 구릉사면에 위치하고 방향은 대부분 남북방향이며 크기는 중형급인 개석식 고인돌로 보인다. 고인돌 수는 적으나 최근 조사된 청동기시대 생활유적과의 관계를 통해 한반도 중부지역의 청동기시대 연구에 중요한 자료가 된다.
| 수월암리 고인돌 1호 |
| 수월암리 고인돌 2호 |
주석
22) 『경기도 고인돌』, 경기도 박물관, 2007을 바탕으로 정리.
23) 고인돌은 큰 돌을 이용해 돌 상자 모양의 무덤방을 만든 후 그 위에 큰 돌로 덮어 높은 형태를 말하며, 큰 돌을 괴고 있다는 뜻의 괸 돌(고임돌)에서 유래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