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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신을 해 아기가 태어날 예정일이 가까워오면 가정에 따라 임신부를 친정에 보내기도 하고 시댁에서 시어머니가 직접 출산을 돕기도 했다. 평택에 거주하는 70, 80대 여성 제보자에 따르면 자신들이 어릴 때는 임신부들이 주로 시댁에서 아기를 낳았으나 점차 친정에 가서 아기를 낳는 경우가 많아졌다고 한다. 시집을 가면 시댁 사람이기 때문에 어떤 일이든 시댁에서 해결해야 한다는 관념이 있어 시댁에서 아기를 낳았던 것으로 보인다. 출산을 하게 되면 아기의 탯줄을 끊어야 하는데 이때는 한 뼘 혹은 세 뼘 길이로 수수깡 껍질을 벗겨 그것으로 잘랐다. 탯줄을 자르는 것을 평택에서는 ‘삼 가른다.’고 했다. 가위로 자를 경우 쇠의 독이 들어갈 수도 있다고 여겨 반드시 수수깡 껍질을 사용했다. 탯줄을 자른 뒤 아기 배꼽에는 풀솜을 붙여두었다. 산모들은 출산한지 20일에서 한 달 정도는 시어머니가 해주는 밥을 먹으며 몸조리를 했다. 아기를 낳은 뒤 산모나 시어머니는 아기가 탈 없이 오래 살기를 바라며 삼신을 위하기도 했다. 삼신을 위할 때는 아기 머리맡에 깨끗한 짚을 깔고 접시에 삼밥 세 그릇을 담아 올려놓은 뒤 미역국 세 그릇과 청수 한 그릇을 준비해놓고 “삼신할머니 우리 아기 잘 되게 해주세요” 혹은 “삼신할머니 애기 무럭무럭 잘 키우게 해주세요” 와 같은 말들을 일주일에 한 번씩 삼 주간 계속 빌었다. 아기 백일이나 돌잔치를 하기 전에도 삼신할머니를 위해 작은 상을 차려놓고 아기의 수명장수를 빌었고 아기가 아프거나 병이 났을 때도 삼신할머니에게 아기가 낫게 해달라고 빌었다. 삼신을 위한 상을 차릴 때는 생선 등 비린 것은 쓰지 않았다.
새마을운동 전까지만 해도 먹고 살기 힘들고 유아 사망률이 높아 아기가 2, 3살이 될 때 까지 출생신고를 하지 않다가 뒤늦게 했다. 출생 신고 전까지 아기 이름은 언년이·개똥이·새똥이·이쁜이·용팔이 등의 아명兒名으로 불렀다. 아명은 임시 이름이지만 액땜을 하는 기능도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