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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권관리98)
조선후기 수원부 가사면 가사곶이었다. 1914년 행정구역 개편 때 권관리, 고잔리를 통합하여 진위군 현덕면 권관리라고 하였다. 안성천 하류와 아산만이 만나는 지점에 마을이 형성됐고, 아산만방조제가 있으며, 방조제 배수 갑문지역에는 계두봉과 계두진이 있었다. 현재 계두진과 계두봉은 아산만방조제 건설 및 배수갑문 확장으로 사라졌고, 고잔마을 동쪽에 평택호예술관, 한국소리터와 평택호관광단지가 조성됐다.
권관리의 자연마을은 상하동(1리), 고잔(2리), 문곡(3리)이 있다. 권관리의 중심마을은 상하동이다. 상하동은 약60호다. 상하동이라는 지명은 마을이 윗말과 아랫말로 구분됐기 때문이다. 일제강점기에는 구장(이장)도 두 명이었다. 이 마을은 전주이씨와 수성최씨가 대성大姓이며, 기씨, 허씨도 함께 거주한다. 마을의 형성 시기는 약 500년 내외다. 전주이씨와 수성최씨가 입향하기 전에는 기씨가 먼저 살았다.
권관2, 3리 문곡과 고잔마을은 본래 기씨와 허씨가 개척한 마을로 규모가 작은 편이다. 상하동에서 문곡으로 넘어 가는 작은 고개는 성너머이다. 성너머에는 지금도 성터의 흔적과 기와편이 발견된다. 고잔은 본래 바닷가 마을로 주민들 가운데는 어업에 종사하는 사람이 많았다. 뱃터는 고잔마을 앞 노랑바위였다. 그래서 일설에는 이곳이 계두진이었다고 주장하기도 한다.
권관리 상하동에는 일제강점기 천도교인들이 많았다. 3·1 만세운동 당시 평택지역 접주였던 이민도와 천도교 부교령과 국회의원을 지낸 이병헌도 이 마을 출신이다. 아직도 몇몇 가문은 천도교의 전통을 잇고 있다고 한다. 곶으로 형성되었던 권관리의 지형은 일제강점기를 전후한 간척사업과 1974년 아산만방조제 준공으로 크게 변했다. 갯벌이 논으로 간척된 것도 이 때였다.
| 권관리의 중심마을 상하동(2012) |
| 평택호관광단지가 있는 권관리(2010) |
주석
98) 이성기(73세), 황규백(75세), 2005년 7월 권관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