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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동삭동東朔洞137)
비전1동 동삭동의 자연마을은 상서재·하서재·모산골이다. 서재는 수원지방법원 평택 지원 북동쪽에 있었다. 2009∼2010년 사이 평택시의 서재지구택지개발사업으로 마을이 폐동廢洞됐고 2013년 현재 자이아파트를 비롯해 빌라·원룸·상가들이 신축 중이다.
서재는 상서재와 하서재로 나뉜다. 상서재는 약 60호, 하서재는 40호로 형성됐다. 상서재를 개척한 인물은 조선 정종의 아들 덕천군德泉君이다. 마을을 개척한 전주이씨와 경주이씨가 대성大姓이다. 하서재는 해방 직후 40호쯤 됐다. 성씨는 각성바지였으며, 주민들은 대부분 농사를 지었다. 하서재는 통복천에 붙어 있어 수해가 심했다. 주민들은 장마철에 비만 내리면 잠도 못자고 물이 범람할까 노심초사했다.
농촌마을이었던 서재일대에 큰 변화가 나타나기 시작한 것은 1990년대 이후다. 1992년 마을 북쪽에 동삭현대아파트가 준공됐다. 평택시에서 가장 먼저 건축된 민영아파트다. 동삭현대아파트 건너편의 삼익사이버아파트는 2000년 입주했다. 2005년 대우 이안아파트가 입주하면서 동삭동은 아파트촌과 농촌지역이 어우러진 도농복합마을이 됐다. 2003년에 동삭초등학교가 개교했다. 동삭초등학교는 학년마다 2∼3학급으로 개교했지만 점차 학급증설이 요구되는 상황이다.
모산골은 평택여자고등학교 옆에 위치한 마을이다. 본래 억새풀이 많아서 ‘모산毛山’이라고 불렀다. 수성최씨가 대성大姓이며 주민들은 농사를 지으며 살았다. 근래 큰 도로변에 상가들이 들어섰고, 마을 앞 모산골저수지 주변에 ‘모산골평화공원’이 조성되고 있다.
| 동삭동 모산골 저수지 |
주석
137) 김학노(64세, 2008년), 김월순(77세, 2007년), 서재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