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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중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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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안중리安仲里25)


안중리는 조선시대 직산현 안중면 지역이다. 본래는 재빼기·길마골이라 했는데 조선 말 현덕면 황산1리 상안중에 있던 안중장터가 옮겨오면서 안중장으로 부르게 됐다. 1895년 행정구역 조정으로 수원군에 속했고, 1914년 황금리를 통합해 진위군 오성면 안중리로 편제했다. 1986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고, 1989년 안중면이 분할되면서 안중면 안중리가 됐다. 서평택지역의 정치·행정·금융·상업·교육의 중심지이고 2002년 안중읍으로 승격했다. 현재 안중읍사무소·우체국·농협·각종 학교가 밀집됐으며 재래상업의 중심지다.


안중리는 1914년 안중리와 황금리(안중5리)뿐이었으며 안중리가 100여 호, 황금리가 50여 호 내외였다. 안중리가 발전하면서 마을이 분동됐고 현재는 모두 6개 마을로 늘어났다.


안중리에는 1,360세대 약 5천여 명이 거주하고 있다. 주민구성은 상업인구와 회사원이 다수를 차지한다.


안중1리는 자연지명으로 해방촌이라고도 부른다. 안중오거리 우측에서 안중초등학교 사이의 마을로 구버스터미널·농협창고·천주교 안중성당·컨벤션 웨딩홀 등 주요 도시기반시설들이 밀집돼 있다. 인구는 2013년 현재 330세대 이상이며, 구시가지여서 토착민들이 이주해 와 외부 유입인구의 증가가 많은 지역이다.


안중2리는 안중초등학교·성공회 안중교회·안중농협 주변 마을이다. 전체 세대 수는 250호 내외인데 근래 원룸이 건축되면서 급격하게 늘어나는 추세다. 토박이들이 많이 살았지만 구 시가지가 쇠퇴하면서 주변의 아파트단지로 이거했고, 원룸을 중심으로 외지인들이 유입되고 있다. 직업은 상업과 서비스 인구가 많았고 현재도 상업인구와 회사원, 일용직 종사자들이 다수를 차지한다.


안중3리는 안중시장 안쪽 마을로 재래상업의 중심지다. 일명 시장통이라고도 하며 전체 240세대가 거주하고 있다. 마을은 대부분이 상가로 형성돼 약 400개 점포가 상업에 종사한다.


안중4리는 안중리의 옛 중심가다. 안중 옛 경찰지서에서 시장 서남쪽을 거쳐 안일물류고등학교 담벼락 위쪽이 마을 영역이다. 이 마을은 언덕배기로 30년 전만 해도 버스터미널이 있었고 안중장이 있었다. 현재도 주거지와 상업지역이 뒤섞여 있으며, 주민들도 상업인구가 절반이 넘고 나머지는 농업인구와 회사원으로 구성됐다.


안중5리 황금리는 옛날 황금이 출토돼 유래됐다는 설이 있다. 일제강점기 이웃마을 금곡4리에 조선인 금광이 있었다는 것을 보면 전혀 근거 없는 주장은 아니다. 경주정씨 추만공파의 동족마을로 경주정씨는 양반가문으로의 사회적 지위와 지주라는 경제적 기반이 있어 오랫동안 안중리 일대에서 위세를 떨쳤다. 안중오거리에는 경주정씨 효열정려가 있고 매년 당제, 정제도 지냈다.


안중6리의 자연지명은 경성주택이다. 이 마을은 1990년대 초 경성주택이라는 회사가 단독으로 122호를 건축해 분양하면서 만들어졌다. 그 뒤 원진빌라·명원아파트가 들어서면서 호 수가 증가했다. 주민들은 농업 인구보다 회사원이거나 노령인구가 많다.



안중리 구시가지 풍경(2011)

| 안중리 구시가지 풍경(2011) |



주석

25) 박언년(83세), 정시옥(81세), 2010년 1월 18일 안중5리 정시옥씨 댁에서 인터뷰
      정수일, 현덕면 기산리, 2007년, 2009년, 2010년 5회 인터뷰
      이황헌(77세), 안중읍 안중리. 2010년 8월 자택에서 인터뷰
      정시옥(81세), 안중읍 안중5리 황금리. 2010년 2월 자택에서 인터뷰
      엄철호(71세), 안중읍 안중리. 안중통합경로당 회장. 2006년 8월 인터뷰
      이계석, 안중읍 안중리. 안중시장상인회 회장. 2010년 8월 인터뷰
      방영숙(59세), 안중읍 안중리. 안중시장 내 안중쌀상회 운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