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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용성리龍城里29)
삼국시대 고구려가 지배할 때는 상홀현 또는 거홀이었고, 신라 경덕왕 때에는 거성현車城縣의 영역이었다. 940년(고려 태조 23)에 용성현이 되었다. 1018년(현종 9) 수주(수원)의 속현屬縣이 됐으며, 조선건국 후 용성현이 폐현廢縣되면서 수원도호부 청룡면으로 편제됐고 설창設倉이 설치됐다. 1895년 근대적 행정구역개편에 따라 수원군 청룡면으로 개편됐다가, 1914년 강길·설창·숙성면 대죽동 일부와 통합돼 청북면 용성리라고 했다. 1987년 안중출장소가 설치되면서 안중면 용성리가 됐다. 자연마을로는 청룡(1리)·강길(2리)·설창(3리)가 있고, 강길마을 앞에는 오뚜기식품(주) 평택공장이 있다.
용성1리 청룡말은 국도 39호선 도로변에 있다. ‘청룡’이라는 지명은 마을 앞 수달피우물에서 청룡이 나와 승천했기 때문이라고 전한다. 한양 조씨가 입향했던 180여 년 전에 마을이 형성됐다. 그 뒤 달성 서씨와 덕수 장씨가 입향했다. 인구는 해방 전까지만 해도 35호였다. 한국전쟁 때 피란민들이 정착했고 1960∼70년대에는 전라도지방의 이주민들이 들어왔다. 10여 년 전에는 나사렛성결교회 은퇴목사 양로원이 마을 한쪽에 건립되면서 55호로 증가했다.
용성2리의 자연지명은 강길이다. 강길은 국도39호선을 중심으로 동쪽을 강길(갱기리), 서쪽은 성뒤라고 한다. 마을의 형성은 대략 150년 내외로 추정되며 성씨도 김해김씨와 평산신씨가 조금 많지만 대체로 각성바지다. 근대전후 강길마을 옆으로는 큰길이 지나갔다. 큰 길은 갱기리 옆을 지나 구실골짜기를 넘어 오성면 양교리 여술과 겸댕이로 넘어갔다. 일제 말 국도 39호선이 건설되면서 이용하는 사람이 크게 줄었다.
용성3리는 조선시대 수원도호부 설창設倉이 있었던 마을이다. 설창은 처음에는 청북면 어소리 구설창에 있다가 나중에 용성리로 이전한 것으로 보인다. 마을은 서북쪽으로는 자미산성과 비파산성이 에워싸고 남쪽으로는 용성리성이 비보하고 있다. 자미산성은 고려 초 용성현의 읍치로 추정되며 후기에는 설창 마을에 있었을 것으로 보인다. 해방 전에는 20여 호, 지금은 30호가 조금 넘는다.
| 옛 수원부의 설창이 설치된 용성3리 설창(2007) |
주석
29) 조언장(78세), 안중읍 용성1리. 2010년 1월 마을회관에서 인터뷰
조석장(73세), 안중읍 용성1리. 2010년 1월 마을회관에서 인터뷰
주석태(71세), 안중읍 용성3리. 2005년 8월 마을에서 인터뷰
김정배, 안중읍 용성2리 이장. 2010년 7월 전화 인터뷰
최덕기, 안중읍 용성3리 이장. 2010년 7월 전화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