관련링크
본문
예로부터 치산치수治山治水는 나라의 중요한 정책이었다. 산림자원을 잘 관리하고 이용하기 위해 고대부터 국가에서는 식목植木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파견된 지방관들이 산림을 잘 보존해야 할 임무가 있었다는 사실은 각 지역의 읍지에서 확인된다.
그러나 전근대 시대의 목재는 연료용, 건축용, 가구용 등 다양한 목적으로 사용됐기 때문에 산림 보존과 관리가 쉽지 않았다. 일제강점기와 한국전쟁 등 혼란기를 거치면서 정부차원에서의 관리가 소홀해졌고 산림은 점차 황폐화됐다. 1960년대에는 나무가 없는 ‘붉은 산’이 한국의 특징이라고 말할 정도였다.
1970년대 정부는 산림청을 신설하고 대대적인 산림녹화 및 보호에 나섰다. 국민 소득 향상과 경제발전으로 농촌지역에까지 화석연료인 석탄(연탄)과 유류油類가 보급됐다. 그 과
정에서 가정 연료의 대부분이던 목재, 즉 땔감에 대한 의존도는 크게 낮아졌다. 특히 연탄은 산림녹화의 1등 공신이었다. 전국토의 산림녹화와 보전에 성공해 한반도는 다시 녹지
를 되찾게 됐다. 지금도 국토녹화운동은 역할을 계속하고 있다. 2010년 현재 평택시 산림면적은 8,573ha로 경기도 산림 면적의 1.63%, 시 전체 면적의 17.8%를 차지하고 있다.
| 덕암산 |
[소유별 임야면적]
(단위 : ha)
연도 | 합계 | 국유림 | 공유림 | 사유림 |
---|---|---|---|---|
1993 | 9,802 | 482 | 221 | 9,099 |
1996 | 9,669 | 467 | 218 | 8,984 |
1999 | 9,515 | 481 | 221 | 8,813 |
2002 | 9,274 | 479 | 221 | 8,574 |
2005 | 8,990 | 473 | 221 | 8,296 |
2008 | 8,681 | 460 | 221 | 8,000 |
2009 | 8,590 | 460 | 221 | 7,909 |
2010 | 8,573 | 459 | 222 | 7,892 |
평택의 임야면적은 감소추세다. 2010년 현재, 1993년 수준의 87.5%로 면적이 감소했다. 사유림 감소가 큰 영향을 주었는데 평택시 임야의 92% 이상이 사유림이다. 대규모로
진행 중인 신도시 건설과 산업단지 개발, 도로건설 등이 임야를 빠른 속도로 줄어들게 하는 주된 원인이다.18)
따라서 도시화와 산업화의 진행과 함께 소중한 산림자원을 보존하기 위한 노력이 필요한 상황이다. 산림자원 보호는 시와 시민들이 함께 노력해야 할 문제다. 일례로 진위면 동천
리, 마산리 등지의 5.38ha 지역은 보전임지임야로 평택시의 산소와 같은 역할을 하고 있다. 개발 흐름을 따르면서도 산림을 보호하기 위해서는 제도적 지원과 함께 산주山主들의
보호 의지도 중요하다.
[조림]
(단위 : ha, 천 본)
연도 | 합계 | 장기수 | 유실수 | 속성수 | 기타 | |||||
---|---|---|---|---|---|---|---|---|---|---|
면적 | 본수 | 면적 | 본수 | 면적 | 본수 | 면적 | 본수 | 면적 | 본수 | |
1993 | 76.1 | 121.2 | 29.3 | 81.5 | 6.1 | 2.4 | 27.0 | 8.9 | 13.7 | 28.4 |
1996 | 37.0 | 80.1 | 17.0 | 51.0 | 4.0 | 1.6 | 16.0 | 27.5 | ||
1999 | 19.4 | 25.6 | 12.4 | 20.6 | 5.0 | 4.0 | 2.0 | 1.0 | ||
2002 | 60.0 | 148.0 | 60.0 | 148.0 | 0.0 | 0.0 | ||||
2005 | 31.0 | 75.4 | 22.0 | 66.0 | 9.0 | 9.4 | ||||
2008 | 50.0 | 114.6 | 44.0 | 110.0 | 5.0 | 3.8 | ||||
2009 | 44.0 | 101.5 | 38.0 | 94.0 | ||||||
2010 | 31.0 | 71.7 | 31.0 | 71.7 |
개발 속에서도 중요한 산림자원을 육성하려는 노력은 지속돼 왔다. 평택지역에서는 치산 녹화계획에 따라 황폐화된 산림을 복구하기 위해 지속적인 노력이 있었다. 녹화계획 1차 연도인 1973〜78년에는 속성수인 리기다 소나무를 중심으로 식재했고 2차 년도인 1979〜88년에는 장기수인 잣나무, 자작나무 등이 식재됐으며 소득용 작목인 밤나무 등의 유실수 재배지가 형성됐다. 1990년대 후반을 제외하고는 매해 30ha 이상 조림사업이 진행됐으며 식목 수도 7만 본 이상을 유지하고 있다. 또한 조림사업은 장기수 위주로 변화하고 있다.
[임상별 임목축적]
(단위 : ㎥)
연도 | 합계 | 침엽수 | 활엽수 | 혼효림 |
---|---|---|---|---|
1993 | 315,638 | 159,086 | 18,748 | 137,804 |
1996 | 362,983 | 183,243 | 20,233 | 159,507 |
1999 | 416,675 | 212,041 | 21,657 | 182,977 |
2002 | 483,078 | 250,804 | 23,626 | 208,648 |
2005 | 524,049 | 236,187 | 66,940 | 220,922 |
2008 | 598,871 | 280,850 | 75,508 | 242,513 |
2009 | 626,753 | 297,706 | 78,084 | 250,963 |
2010 | 944,786 | 491,881 | 110,861 | 342,044 |
이러한 노력은 긍정적인 결과를 가져오고 있다. 비록 임야 면적은 감소하고 있지만 산림의 나무 총량을 뜻하는 임목축적은 크게 증가했기 때문이다. 2010년 현재 임목축적은
944,786㎥로 1993년보다 3배 정도 증가했다. 평택의 산림이 약 3배 정도 울창해졌다는것이다. 식량부족으로 어려움을 겪던 시절, 임산물은 생명보존의 의미에서 오늘날 웰빙이
라는 측면으로 전환된 식량자원이다.
현재 평택에서 생산되는 임산물은 1993년과 많은 차이를 보이고 있다. 1990년대까지 가장 중요한 임산물이었던 종실, 즉 밤·호두·잣·대추·도토리·은행 등의 과실은 비중
이 급감한 반면 각종 버섯과 산나물, 약초와 산수유 등의 약용식물은 생산량이 크게 증가했다. 평택의 임산물 생산은 더 이상 식량 자원 확보가 아닌 건강식품 생산으로 변경됐다.
또한 목재로 사용되는 용재의 증가는 평택 임야의 산림이 성숙했음을 보여주고 있다.19)
[임산물 생산량]
연도 | 용재(㎥) | 연료(M/T) | 종실(kg) | 버섯(kg) | 약용(kg) | 산나물(kg) |
---|---|---|---|---|---|---|
1993 | 1,038 |
30 |
251,924 |
522 |
150 |
1,182 |
1996 | 2,002 |
1 |
302,001 |
1,732 |
15 |
8,171 |
1999 | 2,278 |
13,859 |
5,225 |
18,590 |
||
2002 | 2,837 |
17,205 |
17,958 |
173,100 |
||
2005 | 9,413 |
9,605 |
28,000 |
150,000 |
||
2008 | 11,085 |
7,656 |
38,900 |
78,000 |
||
2009 | 10,913 |
7,516 |
37,200 |
27,000 |
69,518 |
|
2010 | 10,657 |
7,114 |
38,000 |
12,270 |
66,503 |
(한상우_국제대학교 강사)
[참고문헌]
강진철, 『고려토지제도사연구』, 고려대 출판부, 1980.
강진철, 「토지제도」,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 한국정신문화연구원, 1992.
김건태, 『조선시대 양반가의 농업경영』, 역사비평사, 2004.
김용섭, 「전근대의 토지제도」, 『한국학입문』, 대한민국학술원, 1983.
김용섭, 「토지제도의 사적 추이」, 『한국중세농업사연구』, 지식산업사, 2000.
김태영, 「토지제도」, 『한국사』 24, 국사편찬위원회, 1994.
김태영, 「과전법체제와 경기지역의 사회경제 형편」, 『경기도 역사와 문화』, 경기도사편찬위원회, 1997.
『송탄시사』, 송탄시사편찬위원회, 1994.
이상국, 「高麗 職役田 硏究」, 성균관대 박사학위논문, 2004.
이영호, 「토지소유관계의 변천과 토지개혁론」, 『한국사특강』, 서울대학교 출판부, 1990.
전성호, 『조선후기 米價史 연구』, 한국학술정보, 2007.
『통계연보』 평택시, 2001, 2006, 2011.
『평택군지』, 평택군지편찬위원회, 1984.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평택시·경기도박물관, 1999.
『평택군지』, 평택군지편찬위원회, 1984.
『안성군지』, 안성군지편찬위원회, 1990.
『송탄시사』, 송탄시사편찬위원회, 1994.
『남양주시지』, 남양주시지편찬위원회, 2000.
『평택의 역사와 문화유적』, 평택시 경기도박물관, 1999.
『지명유래집』, 경기도, 1987.
『내고장 민속』, 용인문화원, 1987.
『향토사』, 송탄시시사편찬위원회, 1992.
『향토사료집(제2집)』, 평택시문화원, 1992.
『문화유적해설』, 천안시문화원, 1992.
『시정백서』, 평택시, 1999.
『평택시 종합발전계획』, 평택시, 1996.
『평택발전 방안연구』, 평택시, 2000.
『평택비전 2016』, 평택시, 2001.
『아름답고 푸른평택 21』, 아름답고 푸른평택 21 추진협의회, 1999.
『1996년 기준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 경기도.
『2001년 광공업통계조사보고서』, 경기도.
『통계연보』, 평택시, 1995.
『통계연보』, 평택시, 2000.
『1996 기준 사업체 기초 통계 조사보고서』, 평택시.
『시정운영』, 평택시, 2001.
『통계연보』, 평택시, 2000, 2006, 2011.
『통계연보』, 평택시, 2000, 2008, 2011.
주석
18) 평택시, 『통계연보』 2000, 2008, 2011.
19) 평택시, 『통계연보』 2000, 2008, 20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