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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통체계와 물류체계는 국가 운영에 필수적인 부분으로, 전통시대부터 중앙정부는 이에 많은 관심을 기울였다. 교통체계는 군사적인 의미에서도 매우 중요했다. 조선시대 교통체계는 육상陸上·해상海上·하상河上 교통으로 크게 나눌 수 있다. 역원제驛院制는 육상 교통체계 운영을 위한 것이었고 조운漕運은 해상·하상 교통체계를 위한 것이었다. 역원제는 공문서 전달, 관물官物 수송, 외국사신의 왕래와 공무여행자들에 대한 편의 제공을 목적으로 설치됐다. 조운은 지방에서 서울로 올라오는 조세운반과 관할을 위한 제도였다.
역원제, 특히 말을 이용하는 역제는 주요 대로를 기본 축으로 하고 있었다. 대로 중 평택을 지나는 도로는 한양-제주로다. 이 길은 한양에서 과천·수원·오산·진위·평택을 지
나 통영이나 제주로 이어지는 길이다. 조선후기에 새로 생긴 충청수영로가 그것이었다. 충청수영로는 수원에서 진위, 소사를 거쳐 성환으로 가기 전에 팽성 쪽으로 빠져 신창, 광천을 거쳐 충남 보령의 충청수영에 이르는 길이다. 평택은 삼남지방(충청도, 경상도, 전라도)에서 한양에 이르는 대로에 있었다.
조선은 대로를 바탕으로 역제도를 정비했다. 전국 8도 행정구역 내에 41개의 역도驛道와 543개 역이 분포했다. 평택지역에 설치됐던 역도는 경기도의 양재도良才道에 속한 역과 충
청도의 금정도金井道에 속한 역, 2곳이 있었다. 즉, 삼남대로가 지나는 양재도 관할의 청호역菁好驛과 충청수영로가 지나는 금정도 관할의 화천역花川驛이 그것이다. 역제는 조선후기까지 지속되다가 1895년 갑오개혁 때 폐지됐다. 대신 우체사郵遞司를 설치해 전국의 역로와 파발을 일원적으로 운영했다. 이때 진위면 지역은 수원과 공주 사이에 매일 공문서를 발송하는 직로에 위치했고, 평택지역은 이틀에 한 번씩 발송하는 5로 중 1로에 편제됐다.
숙박시설의 일종인 원院은 공무로 여행하는 사람들에게 숙식 편의를 제공하기 위해 교통로의 요충지나 필요한 지역에 설치해 국가가 직접 관리했다. 평택지역에는 장호원長湖院,
이방원李方院, 백현원白峴院, 갈원葛院, 상원上院 등이 있었다. 갈원은 주요 역원으로 왕의 행차가 쉬어갈 정도로 규모가 컸다. 하지만 조선후기로 가면서 원은 점차 소멸됐고 대신 새로 들어선 사설주막이 기능을 대신했다.
한편 대량수송에 유리한 수운은 원거리 대량수송의 상당부분을 담당하고 있다. 조선시대 수운체계인 조운제는 세금으로 거둔 세곡稅穀을 운송하는 것이 목적이었다. 그러나 조선후
기에 상업이 점차 발달하면서 수운활동은 세곡 운송뿐 아니라 지역 간 유통을 담당하는 기능도 맡게 됐다. 평택지역은 진위천과 안성천 등의 여러 하천이 흐르며 해안을 끼고 있기
때문에 수운이 발전하기에 좋은 여건이었다.
실제로 평택지역의 군현들은 조운체계를 통해 세곡을 한양으로 보냈다. 진위현은 흑진黑津에서 세곡을 모아 수원을 거쳐 한양으로 납부했고 평택현은 노산포老山浦에서 대진大津을
거쳐 한양으로 올라갔다. 한양으로 향하는 대로가 지나면서도 수운을 이용하게 된 것은 서해에 인접하고, 진위천과 안성천을 이용해 대규모 운송이 용이했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진위천과 안성천은 하천면적과 유역면적이 작아 수운 활동이 크게 발달하지는 못했다.
진위천 남쪽 방향으로는 천안·아산·당진·예산 등 충남 북부지역과 교류가 많았다. 진위천과 안성천 유역은 삽교천, 곡교천, 무한천 등과 이어져 긴밀한 연관성을 갖고 있었다. 특히 18세기 후반 해운이 활발해지면서 평택지역은 둔포를 매개로 전국 해상유통망과 연결됐다. 연해로 끝에 위치했던 평택은 충청도지역의 해운과 경기도 내륙지방의 육운을 연결하는 결절점에 위치하고 있었다.
| 역·원이 표시된 조선시대 대동방여지도 14첩 6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