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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평택의 천주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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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지역은 천주교 초기부터 연관돼 있다. 우리나라 천주교를 전파하는데 중요한 역할을 담당했던 이승훈(정조 15년)은 1791년 6월부터 11월까지 평택현감을 역임했다. 당시 평택은 충청도에 속해 있었고 현감처소는 객사리(현 팽성읍 객사리)에 있었다. 이승훈은 객사리에서 30리 떨어진 대추리에서 포교활동을 했고 신유박해 때인 1801년 2월 10일 의금부에 구금된 후 2월 26일 순교했다. 그의 나이 46세였다.21)
평택 천주교는 1890년 충청도 예산군 고덕면 상궁리 양촌 본당이 설립되고 퀴를이예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해 충청남도와 경기도 일부를 관할하게 되면서부터 시작됐다.
1895년 아산군 인주면 공세리본당이 분리되고, 1901년 안성본당이 공세리본당에서 분리돼 평택지역 3개 공소(통복리·대추리·신흥리)가 안성본당에 속하게 됐다.
평택 천주교 역사는 공소에서 시작한다. 공소란 특정본당에 속하는 공식적 교회 단위로 신자수가 적고 거리가 멀어 사제(신부)가 거주하지 못하고 주일이나 필요할 때 사제가 들러 미사나 성사를 집전하는 곳을 말한다. 공소 발생은 성당(본당) 건립의 필수조건이다.



| 주일 미사 |



대추리 공소
이승훈李承薰 (베드로)이 1791년 평택 현감으로 부임해 이곳에 전교했다는 구전
1928년 평택 본당에 편입
방축리 공소
1900년 이전 왕립 본당 소속 공소로 건립
1938년 10월 서정리 본당에 편입
1967년 11월 평택 본당 소속 공소로 변경
1998년 1월 30일 평택 본당에서 궁리 본당이 분당됨에 따라 궁리 본당에 편입
궁리 공소
1913년경 왕립 본당 소속 공소로 설립
1925년 왕립 본당 제6대 김원영 신부가 양요셉회장이 기증한 땅에 본당 설립계획을
추진했으나 진위군 서탄면 적봉리 가마골에 본당 설립
1928년 4월 신설된 평택 본당 소속 공소로 편입
1998년 1월 30일 본당으로 설립
본정리 공소
1938년경 대추리 공소 교우들의 전교를 방선재(베드로)가 최초로 영세 입교한 후
모범 공소로 발전
1983년 8월 1일 팽성본당에 편입
두리 공소
평택군 팽성읍 두리 공소는 1950∼1960년대 초 평택 본당 소속 공소로 설립
1983년 8월 1일 팽성본당에 편입
안정리 공소
1969년경 미군 기지촌인 이곳에 20여 세대 신자가 작은 공동체를 이루고
김상용(콘라도)을 중심으로 공소 강당 건립을 추진
1983년 8월 1일 본당으로 승격
동고리 공소
1966년 공소 강당을 신축, 1978년 9월 건물을 철거하고 새 강당을 신축
1996년 12월 매각 처분
신대동 공소
1998년 1월 30일 궁리 성당에 편입
지제동 공소
1998년 1월 30일 궁리 성당에 편입
원좌교 공소
1984년 4월 서정리 본당에서 평택 본당에 편입
1998년 1월 30일 다시 궁리 성당에 편입


1923년 11월 왕립본당 관할 공소 중에서 수원읍이 독립해 본당으로 승격됐고 1925년 진위지역이 왕립본당에서 분할됐다. 당시 왕립본당 주임신부는 김원영金元永(아우구스티노) 신부였다. 김영근金永根(베드로) 신부는 진위지역의 새 본당 후보지로 서탄면 적봉리 가마골을 선정했다. 이곳이 진위지역(평택지역) 최초의 본당이다. 진위가마골(적봉리) 본당은 1925년 6월 왕립본당에서 분할 창설됐다가 단명으로 끝났다. 이후 평택지역 3개 공소는 안성본당에서 관할했으며 진위군내의 많은 공소는 몰리마르(모요셉) 신부가 임시로 돌봤다.
평택지역 최초의 성당은 1928년 4월 14일 프랑스 신부인 몰리마르 신부에 의해 평택군 비전리에 건립된 평택성당이고22) 다음이 서정리성당이다. 평택성당 몰리마르 신부가 1929년부터 서정리 공소를 관할하게 되면서 1932년 송탄면 서정리에 부지를 마련하고 1934년 임시 한옥 사제관을 지었다. 1938년 성당과 사제관을 완공해 몰리마르 신부가 초대 본당 신부로 부임했다.23)
1952년 서정동성당 제3대 신부로 부임한 유수철 신부는 신장리에 부지를 마련해 송탄성당 분리 작업을 시행했고 1965년 송탄성당이 창립돼 초대신부로 강원유 신부가 부임했다.
1954년 11월 신인균 신부가 오성면 안중리를 초도방문하고 김동수(프란치스코) 집에서 안중리 교우들이 모인 가운데 첫 미사와 가을 판성 성사를 집전했다. 이를 계기로 안중리 공소가 태동됐다. 안중 교우들은 곧 본당 신부의 허락을 받아 약사인 서재복(야고보)의 단칸방 약국에 ‘안중천주교회공소’라는 간판을 달고 평택성당 관할 공소로 출발했다. 초대 회장은 서재복이 임명됐다. 이후 1966년 1월 1일 안중리 교인들의 노력 끝에 본당으로 승격됐다.
1982년 3월 송탄 제2성당이 분리 신설된 후 6월 송서성당으로 개칭돼 1985년 9월 성당이 준공됐다. 1983년 팽성성당을 평택성당에서 분리해 그 다음 해에 성당을 준공했고 초 대신부로 박철 신부가 부임했다. 비전동성당이 평택성당에서 분리돼 1995년 비전2동에 성당이 창립됐다. 1998년 고덕면 궁리성당이 평택성당에서 분리 창립돼 이동춘 신부가 부임 했다.24)
현재 평택에는 평택성당을 비롯해 서정동성당·팽성성당·안중성당·송서성당·비전동 성당·송현성당·세교동성당·포승성당·궁리성당·모산골성당·청북성당 등 12개 성당 이 있다.



주석

21) 『평택시사』, p.937.
22) 위의 책, pp.937~938.
23) 위의 책, p.938.
24) 위의 책, pp.938~939.