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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육>시대별 교육제도와 평택교육>근대 개화기>평택의 근대 교육기관>서당교육
■ 서당교육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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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당교육12)



서당은 고구려의 경당扃堂에서 시작됐으며 향촌사회에서 각 마을의 기본 단위마다 설립한 사립교육기관이다.
서당은 개인이나 지역 주민이 출자해 설립 운영했고 설립에 일정한 규제가 없었다. 독서당(사숙私塾)은 훈장자영 서당·유지독영서당·유지조합서당·동리공동서당·동족조합서당 등의 형태로 운영됐다.
교관은 훈장 1명, 접장 1명, 학도 1명이고 7∼8세에 입학해 15∼16세가 되면 졸업했다. 주로 강독講讀·제술製述·습자習字를 가르치고 강독교재는 천자문·동명선습·통감·사서삼경 등이었다.
조선 말기 영의정을 지낸 어떤 이의 친척인 김윤희라는 선비가 낙향해 1900년경부터 조개터(지금의 합정동) 자기 집에 서당을 열고 교육을 했는데 이 서당을 ‘평택서당’이라 했다.
조선말기 오성면 죽리(속칭 댓골마을)에 진사 조종명이 ‘죽림서당’을 세워 가르쳤고 일제 강점기까지 지속됐다. 훈장은 여러사람이 거쳐갔고 마지막 훈장은 조원행이었다.
1900년 초기 가곡리·봉남리·독곡동·도일동·내기리·방림리 등에 서당과 사족집단이 자제를 교육하기 위해 설립한 독서당·사숙·자영서당 등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 서당(단원풍속화첩) |


주석

12) ① 김명자, 앞의 책, pp.70~71.
      ②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 2001. p.737.
      ③ 평택군지편찬위원회, 『평택군지』, 1984, pp.807~80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