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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고려시대의 교육제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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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려시대의 교육제도1)




국자감國子監은 고려시대 관학 교육기관이며 개경에 설립됐다. 충렬왕 원년에 ‘국학國學’으로, 충렬왕 34년에 ‘성균관成均館’으로 이름을 바꾸었다. 교육과정은 유학 3과(국자감·태학·사문학)는 수학연한이 9년이고, 잡학 3과(율학·서학·산학)는 6년을 원칙으로 했다.
국자감 이외에 12도라는 교육제도도 있었다. 최충은 1053년(문종 7) 자신의 집에 12도를 설치하고 국자감을 능가할 정도의 우수한 교생들을 모아 가르쳤다.
예종은 양현고養賢庫를 설치해 국자감을 지원하고 전국적으로 관학양성 진흥책을 펼쳐 12도는 국자감과 성균관보다는 한 단계 낮은 중등교육기관으로 자리를 잡게 됐다.
지방에는 향교鄕校가 있었다. 향교 시설은 국자감의 축소판이었고 문묘와 명륜당이 있어 유교 사당과 같은 성격을 지닌 형태였다. 고려 말기에는 서재書齋와 서당書堂이 등장했다. 고려시대 평택지방은 여러 작은 행정구역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안성천 북쪽에는 진위현과 영신현이, 남쪽에는 평택현과 경양현이, 진위천 서쪽에는 용성현과 광덕현이 설치됐다.
옛 용성현의 읍치로 추정되는 용성리의 비파산성, 평택현과 팽성읍의 내리와 옛 양성현의 원곡동 관동마을에 ‘향교 터’라는 이름이 남아있다.2)



주석

1) ① 피정만, 『한국교육사 이해』, pp.34~40.
    ② 김명자, 『평택교육사』, 평택교육사편찬위원회, 2005, pp.52~56.
    ③ 『고려의 교육제도, 국자감』, 한국어 위키백과사전 등에서 발췌

2) 김명자, 앞의 책, p5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