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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남방송’은 1997년 7월 10일 납입자본금 80억 원으로 회사를 설립한 후 죽백동 140-7번지에 대지 1천 717평을 마련해 방송국사를 착공했다. 1998년 7월 7일 지상 3층·지하 1층·연건평 6백 평 규모의 방송국사 준공식과 개국식을 통해 평택지역에서도 뉴미디어인 다채널·다매체의 케이블TV 시대가 열렸다.31)
2000년 12월말 당시 동아제약·강남개발·샘표식품·평택산업 등 16개 기업 주주와 김장규·배종식·김택 등 35명의 개인주주가 회사 경영에 직·간접적으로 참여했고 자본금은 130억 원이다. 당시 조직은 김장규 대표이사를 중심으로 경영지원국·보도제작국·영업지원국·기술지원국과 15팀으로 구성됐으며 행정·영업·보도제작·방송·기술 등에 100여명이 있다.
초창기 평택을 중심으로 가입자를 확대해 나가고 송탄유선방송 등 중계유선방송과의 협업 가입자를 포함해 15만 세대가 케이블TV를 시청하게 됐다. 용인·안성·이천지역에서도 가입자가 증가해 경기남부지역의 유일한 방송매체로 자리 잡아 나갔다.
‘기남방송’은 1998년 7월 7일 공식적인 개국식 이전부터 방송 서비스를 제공했다. 1998년 4월부터 6·4전국동시지방선거 관련 특집방송으로 ‘평택시장 후보자 초청토론회’와 ‘경력방송’, ‘방송연설’ 등 세부 프로그램을 방송했고 5월 21일 ‘GBC뉴스’를 첫 방송했다.
기남방송은 방송국 허가와 함께 보도본부장 박성복32)이 개국을 준비하고 평택취재팀을 비롯한 5팀 체제의 조직으로 지역채널을 운용해 모든 기자가 기획부터 취재·촬영·편집·출연까지 담당하는 VJ(Video Journalist)방식으로 채택·운영해왔다.
| 한국케이블TV 기남방송 개국식 |
주석
31) 평택시사편찬위원회, 『평택시사 하권』, 2001년, p.1019.
32) 박성복은 평택군4-H연합회장으로 농촌운동을 했고 ‘평택신문’ 편집부장, ‘기남방송’ 편성책임자 겸 보도제작국장, ‘평택시사신문’ 부사장을 역임한 우리나라 지역 언론 1세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