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권영일權寧一(1900∼1973)


본관은 안동安東. 진위면 가곡리에서 출생했다. 서울보성중학교를 졸업하고 일본으로 유 학해 와세다대학 교외생으로 수학했다. 귀국 후 한성은행, 경성상공회의소 부회장, 경동중 학교 후원회장, 서울시참사, 경성고무주식회사 사장, 삼천리신발회사 사장, 대륭고무공업 사 사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해방 후 이승만 박사가 귀국해 거처를 마련 못하자 3·1 동 우회를 조직 이화장을 매입·제공했으며 이승만 박사가 활동하는데 도움을 주어 세인으로 부터 격찬을 받았다. 1973년 노환으로 별세했으며 묘는 진위면 가곡리에 있다.

참고문헌 : 『평택시사』



이강세李康世(1904∼1944)


본관은 전주. 기동紀東의 아들이며 청북면 원덕우리 206번지에서 1904년 출생했다. 어 려서 향리에서 한문을 수학했고 장성함에 따라 농촌의 빈한함을 늘 탄식했다. 당시 농민들 은 매년 다가오는 한수해와 풍수해 그리고 해일 등으로 농경을 실패하고 극도의 국빈을 면 치 못했다. 그는 농민의 생활현실이 해마다 다가오는 재해에 있다는 것을 인식하고 사유 재산으로 당시 일화 이십오만엔(백미 오천 가마)의 거금을 투입하기로 했다. 수리 안전관 개사업과 해일 방지를 위한 방조제 축조공사로 1940년 청북면 옥길리에서 건너편 포승면 홍원리를 건너막는 해안 간척지 제방공사를 착공했다. 3년여 동안 공사기금 조달을 위해 부모로부터 상속된 사유전답 연간 3,900여 석의 수확 농지 중 우선 1,000여석 분의 농지 를 처분해 제방공사에 투자했으나 실패했다. 그후 일제로부터 비행기헌납 기금을 내라는 압박을 받고 피신했다가 1945년 8월 15일 해방을 몇일 앞두고 마을 뒷산에서 자결했다.

참고문헌 : 『평택시사』



정동순鄭東淳(1909∼1991)


본관은 봉화奉化, 호는 효림曉林이다. 진위면 은산리에서 태어나 이곳에서 어린 시절을 보냈다. 일본으로 유학을 떠나 와세다대학早稻田大學을 졸업했다. 이후 주일대표부 이사, 한일경제인협회 이사, 재일거류민단중앙부 상임 고문, 해외 교포 대의원재일거류민단 동 경본부단장, 삼본건설, 공업건설주식회사 사장, 미리온흥업주식회사 사장 등을 역임했다. 진위향교와 산대초등학교를 후원하였고 사회 사업에도 공헌했다. 서훈으로는 국민훈장모 란장, 목련장 등을 수훈했다. 묘는 안성시 원곡면 산하리 산18번지에 있다.

참고문헌 : 『평택시사』



정종인鄭鍾寅(1883∼1954)


본관은 봉화奉化. 동몽교관童蒙敎官 재숭在崇의 장자로 은산리에서 태어났다. 자는 희빈羲賓이다. 일찍 신학문을 받아들여 측량학교를 졸업하고, 측량기사로 전국을 누비다 대구 용연사에 삼봉집 목판이 있다는 사실을 알고 당시 경상도관찰사를 설득해 손수 은산리로 이송해 왔으며 이를 계기로 삼봉정도전 사우와 위토 마련에 많은 관심과 헌신으로 오늘날 삼봉 제단과 향사가 이어지게 한 공로가 있다. 묘는 진위면 은산리 200번지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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