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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태경金泰卿(1933∼2010)
본관은 강릉江陵. 합정동에서 출생했다. 1952년 서울대 사범대부속고등학교를 졸업하고 서울대학교 법과대학을 졸업했다. 동년 제7회 고등고시 행정·사법 양과에 합격했다. 합격 후 내무부 지방국 수습행정과를 시작으로 1960년 내무부기획관리실 서기관, 1963년 충남 내무국 국장, 1966년 내무부 재정과장, 1969년 대통령비서실 정무비서관을 지냈다. 1971년 제13대 경기도지사로 발탁됐다. 퇴임 후 동부고속사장, 삼성전자 부사장, 1981년 농어촌개발공사장, 광주개발사장, 중부컨트리클럽사장 등을 두루 역임했다. 1988년 변호사를 개업해 활동하면서 1990년 세종대이사, 1998년 경기도민회장, 제2의 전국 범국민운동 경기도위원장, 목우회장, 지방행정동우회 중앙회장 등 왕성한 활동을 했다. 상훈으로는 대통령공로표창을 수상했다. 2010년 숙환으로 향년 77세에 별세했다.
문재정文在旌(생몰미상)
본관은 남평南平. 중시조인 강성군 익점의 19세손으로 무섭의 아들이다. 고덕면 좌교리 출생이고 그 용모와 인품이 아주 준수하고 성품 또한 고와서 선비의 가통을 이은 대표적 인물이다. 본시 한학에 출중해 고종조 말기 함경북도 경성군수로 전임됐으나 수천리 타향에서의 관직보다는 고향의 노부모 봉양을 걱정해, 군수직을 사임하고 돌아왔다. 그 후 경술국치로 한일합방을 맞이한 그는 두문불출하고 후학 교육에 열중했으나 당시 평택군수인 김진문의 친구 권고로 관선 고덕면장에 취임했고 십수년간 고덕면의 면정쇄신을 위해 많은 공헌을 했다.
참고문헌 : 『평택시사』
정우범鄭雨范(생몰미상)
본관은 동래東萊. 창원공昌原公 광보光輔의 후손으로 현덕면 황산리에서 출생했다. 어릴 때부터 한학이 능통했고 보성전문을 나온 후 일본으로 유학 명치대학을 졸업 후 귀국해서 는 고향인 본가에 은거하면서 법률서적의 저서에 힘써왔다. 왜경倭警은 그의 항일사상이 강렬함을 느끼고 요시찰적 대상인물로 보고 늘 감시해 왔다. 그는 일제강점기 조선의 식민 지화 정책으로부터의 보호를 위해 많은 노력을 도모한 바 있다. 경기도 평의원직을 역임했 고 해방직후 현덕면장을 지냈다. 사후 현덕면 사무소 내에 주민들이 영세불망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 『평택시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