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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통사회에서는 혼인을 결정할 때 혼례 당사자의 의사는 그리 중요하지 않았다. 그러나 1960년대 이후부터 서서히 혼례 전 신랑이나 신부의 사진을 교환하며 당사자의 의견이 반영될 수 있었다. 혼인이 어느 정도 정해진 상태에서 신랑이 자신의 어머니, 숙모나 고모 등과 함께 신부 집에 선을 보러가기도 했다. 일종의 상견례相見禮인 셈이다.
중매에 의해 혼담이 오가게 되면 혼인과 관련된 일이 본격적으로 시작된다. 일제강점기 이전에는 결혼 전 상대방을 한 번도 만나지 못했고 친척이나 ‘주인애비(중매장이)’ 등의 중매를 통해서만 혼례가 이뤄졌다. 일제강점기 이후에는 어느 정도 혼담이 오간 뒤 선을 보러 가기도 했다. 선은 신랑 될 사람이 신부 될 사람의 집으로 가기도 하고 그 반대로 하기도 했는데 부모님만 가거나 총각(혹은 처녀)과 어머니, 중매인이 함께 가는 경우도 있다.
신랑 될 사람 일행이 선을 보러 가면 처녀 집에서는 간단한 음식을 해서 일행에게 대접했다. 당사자는 혼인할 상대를 처음 보는데다 주변에 어른들이 있는 어려운 자리여서 별다른말을 건네지는 못하고 곁눈질로 신랑이나 신부의 얼굴 생김새 등을 살피는 정도였다.
혼인이 확정되면 신부 어머니는 혼수를 마련했다. 지금처럼 살림살이를 따로 준비하지 못하고 입는 것 위주로 했으며 버선이나 치마저고리 등은 모두 10개 단위인 ‘죽’으로 준비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