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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도일동道日洞
도일동은 덕암산 남쪽에 있다. 주민들은 덕암산(해발 164.5m)에는 아흔 아홉 골짜기가 있으며 골짜기마다 아흔 아홉 개의 마을이 있다고 말한다. 도일동은 도일과 여좌울로 나뉜다. 도일은 원도일을 말하며 퇴일 또는 퇴울로도 불려진다. 여좌울은 조선후기 도일동 일대가 여방면에 속했기 때문에 유래됐다.
도일이라는 지명은 원도일에서 왔다. 도일동은 1914년 상리·내리·하리를 통합해 형성됐다. 원도일은 2백여 년의 역사를 갖고 있다. 원도일이 형성되기 전에는 샛둘과 삼짓말이라는 마을이 있었다고 한다. 처음에는 5호가 모여 살다가 점차 마을이 확대돼 현재는 전원주택단지를 제외하고도 30여 호쯤 된다. 성씨는 진주소씨가 많다.
여좌울의 상리·내리·하리는 덕암산 아흔아홉 구비에 자리 잡은 마을이다. 처음 여좌울에 자리 잡은 성씨는 석씨였고, 고려 말에 진주소씨가 정착했으며, 조선 전기 진주소씨와의 혼인관계로 원주원씨, 수성최씨가 입향해 오늘에 이른다고 한다. 현재 상리·내리·하리의 대성大姓은 원주원씨다. 원주원씨는 입향조 원몽이 진주소씨와 혼인하면서 입향入鄕했다. 그 뒤 진주소씨와의 혼인관계와 경상도병마절도사 원준량, 삼도수군통제사로 선무1등공신에 오른 원균, 그리고 의병과 지방관으로 임진왜란에 종군한 원연·원전·원사웅·원사립을 거치며 가문이 크게 성장했다.
상 리110)는 황샛말·사창이·샛골·안골·배낭골·은골·양산골 등 11개 마을로 형성됐다. 근대 이전에는 도일천 남쪽은 양성현 땅이어서 여좌동과 여우동으로 나뉘었다. 사창이는 조선시대 진위현의 사창이 있던 마을이다. 마을 앞에는 뱃터라는 지명도 있으며 조운선의 뱃줄을 맸다는 느티나무도 있다. 1960년대 초까지만 해도 상리 전체는 60호 내외였다. 근래 전원주택과 상가가 건립되고 외부유입인구가 늘어나 현재는 100호가 넘는다. 주민들은 대부분 농업에 종사한다. 1950∼60년대에는 한과·떡·엿을 고아 시장에 내다 파는 사람, 나무를 해서 평택장·서정리장에 내다 파는 사람도 많았다. 마을의 경제력은 농지개혁과 1970년대의 야산개발, 아산만방조제 준공으로 크게 향상됐다.
내리111)는 원릉군 원균의 유적이 남아있는 마을이다. 내리에 속한 자연마을은 석비·운터말·새말·갓골·능말·암말·깊은골·오리골·등치골이다. 규모는 대부분 7∼8호에서 4∼5호 수준으로 작은 마을이다. 내리 초입의 석비石碑 마을은 7∼8호의 작은 규모로 마을입구에 원주원씨 세거비世居碑가 있다. 원주원씨 재실 모선재 뒤에 형성된 운터말은 본래 원터말이었을 것이다. 운터정이라는 우물이 있어 가뭄에도 마르지 않고 물맛이 좋아 유명했다. 깊은골은 덕암산 골짜기 깊은 곳에 형성돼서 유래됐다. 원주원씨 선영先塋과 원균의 생가 터와 울음밭이 있다. 능골은 원균장군 묘 뒤쪽에 형성된 마을이다. 갓골은 원균장군 묘 서쪽이다. 암말은 덕암산 가장 안쪽에 위치한 마을로 전원주택 단지가 들어서면서 자연경관이 훼손되고 마을도 드러나 모양새가 나빠졌다. 오리골은 암말 서쪽 등성이 너머 계곡을 말하고 등성이를 하나 더 넘으면 등치골이다.
내리는 1960∼70년대까지만 해도 원주원씨 동족마을이었다. 암말과 운터말에 전원주택단지가 들어서고 외지인들이 들어오면서 주민구성이 많이 바뀌었다. 이 지역은 논보다 밭이 많았다. 비탈진 산기슭을 따비로 개간해 만든 따비밭이 많았다. 1970년대 야산개발과 함께 밭을 논으로 개간했다. 그렇지만 한 집에 논 4∼5마지기에 불과해 생활이 어려웠다. 여성들도 1960∼70년대까지는 산에서 나무를 해다가 서정리장·평택장에 내다 팔기도 하고, 강원도 옥수수가루를 사서 옥수수엿을 만들어 팔기도 했다.
하리112)는 80여 호가 모여 사는 큰 마을이다. 마을은 큰여의실과 작은여의실, 원당골 그리고 삼남대로를 중심으로 주막거리·서낭댕이·왕뒤·개천거리·대마거리·투구봉·숫돌고개가 있다. 여의실은 진위군 여방면 시절에는 여동如洞과 의곡意谷으로 나누어 불렸다. 큰 여의실은 앞쪽에 나앉은 마을이고 작은 여의실은 원균장군 사당 아래 쪽이다. 원당골은 구한말 양성군 원당면에 속했던 지역으로 당집이 있었다. 도일동 사거리 부근의 주막거리에는 술맛이 좋은 ‘감주거리 주막’이 있었다. 개천거리는 도일천이 흐르는 개천 부근이다. 왕뒤는 암말 서쪽 고개 너머다. 근래 전원주택들이 많이 들어서서 새로운 마을이 형성돼 가고 있다. 하리도 원주 원씨의 동족마을이다. 1950년대까지만 해도 주민들의 90% 이상이 원씨였지만 이제는 70% 정도라 한다.
| 도일동 하리 여의실 마을(2012) |
| 원균장군 묘가 있는 내리마을(2010) |
주석
110) 원양식(64세), 원제화의 둘째 아들로 도일동 상리 토박이. 2012년 1월 31일 자택에서 인터뷰
111) 피옥순(82세), 윤정숙(84세), 2012년 1월 31일 내리 경로당에서 인터뷰
112) 원유택(2012년, 71세), 원형재(2012년, 74세), 원제향(2012년, 84세), 하리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