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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방·치안·소방>국방>군사제도의 변천과 평택>삼국에서 고려시대의 군사제도와 평택>삼국시대
■ 삼국시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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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택지역은 삼국시대에 북쪽은 고구려, 남쪽은 백제 땅에 속하면서 고구려의 남진정책과 이에 대항하는 백제와의 공방전이 치열했던 곳이다. 전체적으로 볼 때 이 지역은 4세기 후반에는 백제의 영토에 속했으며, 5세기에는 고구려에, 6세기 중반에는 신라에 속하게 됐다. 백제의 지방조직은 4세기 중엽 근초고왕近肖古王 때 정비되고 이 시기 지방 통치조직은 담로체제擔魯體制다.
한성시대부터 마련돼 웅진도읍기까지 실시됐던 담로제는 성왕聖王이 사비로 천도하면서 방-군-성체제로 정비됐다. 각 방성方城에는 1000명 내지 700명의 군사가 배치돼 있고 방성의 장관인 방령方領이 통솔했다. 군의 장관을 군장郡將이라 하여 군지휘관으로서의 기능을 가지고 있었다. 배속된 군병은 일반민들로 충원했다.
고구려의 지방통치조직의 편제방식은 성을 중심으로 군사적·행정적 중요도에 따라 네등급으로 구분됐다. 욕살褥薩이 파견된 대성大城과 처려근지處閭近支가 파견된 성, 가라달可邏達이 파견된 성, 누초婁肖가 파견된 성 등이다. 욕살이 파견된 대성은 행정구역이며 부의 중심성으로 군사령부가 위치했다. 지방관은 지역에서 행정상 최고책임자일 뿐만 아니라 군지휘관으로서의 기능도 있었다. 대성大城의 장관인 욕살은 지방관이며 지방군사조직의 최고지휘관이었다. 고구려의 군부대는 일반적으로 당이라 했다. 당의 지휘관은 중앙의 귀족 출신들이 맡았지만 당에 배속되는 군사軍士는 일반민을 주로 동원하는 체제였다.
신라는 중앙집권적 국가체제로 집중되면서 각 지방 수장들이 가지고 있던 군사권이 해체돼 국왕 휘하로 일원화됐다. 국가체제 정비와 더불어 정복적 팽창활동과 삼국 사이 전쟁으 로 군사조직의 규모도 확대되고 중앙과 지방에 다수의 군부대들이 설치됐다. 군부대의 명칭은 기본적으로 당·정이 사용됐다.
진흥왕대에 군사조직도 확대·개편됐다. 진흥왕대에 지방에 배치된 핵심군단으로 상주정上州停·하주정下州停·신주정新州停·비열홀정比列忽停·하서정河西停이 있었으며 각 정 은 주의 중심지에 배치돼 있었다.



주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