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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기찬李基燦(1875∼1944)


1875년 진위면 태생으로 유년기는 고향에서 한학을 수학하고 한말 한성 재학 시는 함태영咸台永 부통령과 같이 수학했다. 법관양성소를 나온 후 변호사 업을 서울에서 했고 임정 중기는 중추원참의까지 역임했다. 8·15 해방 전에는 평양으로가 득병得病하고 1944년 그 곳에서 사망했다. 평택 사람으로 일제강점기 법조인은 그가 최초이다.

참고문헌 : 『평택시사』



조용락趙鏞樂(1931∼2012)


본관은 순창淳昌, 호는 효민曉民이다. 서탄면 내천리에서 출생했다. 1950년 서울대 사범 대 부속고등학교를 졸업 후 1956년 서울대학교 교육행정학과를 졸업했다. 졸업 후 1951년 제8회 고등고시 사법과를 합격해 1961년 청주지방검찰청 충주지청 검사로 임관했다. 서 울·대구지방검찰청에서 검사로 활동했다. 1973년에 대구지방검찰청 부장검사로 승진했 다. 1975년 전주지방검찰청 군산지청장, 1978년 서울지방검찰청, 의정부지청장, 1979년 서울지방검찰청 남부지청장을 지냈고 동년 서울고등검찰청 검사장을 끝으로 공직을 마쳤 다. 1984년 서울에서 변호사 개업을 했다. 서울시 법률고문 건설부 토지평가위원회 부위 원장, 서울교육청 법률고문, 건설부 법률고문 등으로 활동했고 1992년 제27대 서울대 사 범대학 총동창회장을 역임했다. 1996년 한국광고자율심의기구 제2대 및 제3대 심의위원 회 위원장을 맡아 활동했다. 상훈으로 국무총리표창(농협감사유공), 대통령표창(법의생활 화 운동유공)을 수상한 바 있다. 2012년 숙환으로 별세했다. 묘는 화성시 양감면에 있다.

참고문헌 : 『동아일보』,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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