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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봉진朴鳳鎭(1890∼1943)


본명은 김만흥金萬興이다. 평택 출신이다. 16세까지 한학을 공부하다가 수원水原으로 나가 기독교에 입교했다. 금은방에 취직해 경제적인 기반을 쌓고 다시 고향으로 돌아왔다. 1919년 3·1 운동 때 평택 교회지도자들과 만세운동을 주도하다 옥고를 치렀다. 1923년 집사로서 평택성결교회당 건립을 주도했다. 1932년 경성성서학원에 입학, 1935년 졸업하고 여주교회 담임목회자로 부임했으며, 1938년 성결교회에서 목사안수를 받았다. 당시 한국 모든 개신교와 천주교는 일제 강압에 의해 신사참배를 수용했으나 몇몇 교직자들을 끝까지 반대했다. 박봉진도 신사참배를 반대한 사람으로 그 일로 강원도 철원교회로 옮겨가게 됐다. 그곳에서도 신사참배를 거부하다 일경에 체포됐고 철원경찰서에 구금돼 3년여 만에 병보석으로 출소했으나 고문 후유증으로 사망했다.



이충헌李忠憲(1915∼1984)


본관은 함평咸平, 호는 경신景信이다. 포승읍 홍원리에서 출생했다. 어려서부터 총명했으며 성장한 후 죽헌竹軒 박제봉朴齊鳳선생 문하에서 한문을 수학했다. 해방 후인 1946년 31세에 기독교에 입교해 집사 및 장로로 봉직했다. 대한기독교 나사렛교회 교단과 안중나사렛교회와 홍원나사렛교회 창립에 참여해 교회부흥에 큰 공헌을 했다. 1948년 한약업사 고시에 합격해 안중에서 중향당한약방을 개업해 어려운 이웃에게 박애정신으로 인술을 펼쳤다. 또한 서당을 열어 학교에 진학 못한 아동들에게 한문을 가르쳤다. 특히 장학회를 만들어 형편이 어려운 대학생 20여 명과 중고생 90여 명에게 장학금을 주어 면학의 길을 열어주었다. 1957년 평택군 포승면 지방자치의회의원에 피선돼 지방자치 발전에 공헌했다. 1973년 안중유치원을 설립하고 1983년에 안중 예절학교를 세워 인성교육에 심혈을 기울였다. 한학에 조예가 깊어 많은 문인들과 교우했고 한시 2,000여 수를 남기었다. 1984년에 졸했다. 묘소는 포승읍 홍원리 신원에 있다. 사후 후손들이 유작을 모아 경신시문집景信時文集과 은몽서恩夢敍를 출판했으며 지역유지들이 묘소 앞과 나사렛 안중교회에 송덕비를 세웠다.

참고문헌 : 『중부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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