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9대 국회의원 선거(1973. 2. 27) > 정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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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제9대 국회의원 선거(1973. 2. 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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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72년 11월 21일 실시된 국민투표를 거쳐 공포된 유신헌법으로 국회의원 선거는 소선거구제에서 중선거구제로 변경됐다. 전국구 제도가 폐지되고 국회의원 임기가 6년으로 연 장됐으며 통일주체국민회의 대의원들에 의해 국회의원 정수 219명 중 1/3인 73명이 선출되는 비민주적 제도가 도입됐다. 통일주체국민회의에서 선출한 73명의 국회의원들은 독자 적인 원내교섭단체를 구성해 1973년 3월 10일 유신정우회(유정회)를 발족하게 된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는 1973년 2월 27일 실시됐다. 당시 평택은 안성, 용인과 함께 경기도 제5선거구에 편성됐다. 선거는 평택을 근거로 하는 신민당의 유치송과 안성을 근거로 하는 민주공화당 서상린의 경쟁구도로 진행됐다. 신민당의 유치송 후보가 40.6%(64,895표), 민주공화당의 서상린 후보가 32%(51,134표)를 획득해 두 후보가 제9대 국회의원에 당선됐다. 유치송은 평택군에서 56.6%의 지지를 받았고 서상린은 안성(39%)과 용인(40.3%)에서 우세한 득표율을 보였다. 유치송은 신민당 원내부총무, 경기 제5지구당 위원장, 정무위원, 사무총장, 최고위원을 거치며 다시 재기에 성공했다. 반면 제7대 국회의원에 당선됐으나 공화당에서 제명됐던 이윤용은 다시 무소속으로 출마했으나 10%에도 미치 못하고 탈락한 뒤 정계에서 은퇴했다. 한편 최영희는 유정회 소속으로 제9대, 10대 국회의원을 지냈고 1979년 유정회 의장을 역임했으며 1980년 12월 유신정우회가 강제 해산 된 뒤 정계를 은퇴했다.



[제9대 국회의원 선거 평택·안성·용인지역 후보자별 득표현황]18)

(1973. 2. 27 시행)

구분 유효투표수 후보자별 득표수 및 득표율(%)
    민주공화당 신민당 민주통일당 무소속 무소속
서상린 유치송 유택형 서성태 이윤용
159,974 51,134
(31.96)
64,895
(40.56)
19,638
(12.27)
9,646
(6.02)
14,661
(9.16)
평택군 73,637 17,021
(23.11)
41,697
(56.62)
3,449
(4.68)
2,831
(3.84)
8,639
(11.73)
안성군 50,463 19,670
(38.97)
13,043
(25.84)
11,330
(22.45)
2,350
(4.65)
4,070
(8.06)
용인군 35,874 14,443
(40.26)
10.155
(28.30)
4,859
(13.54)
4,465
(12.44)
1,952
(5.44)


주석

18)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선거통계시스템 제9대 국회의원선거 개표진행상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