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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율북리栗北里83)
율북리는 화성군 양감면 용소리와 경계를 이루고 있다. 자연마을은 밤뒤(1리)·안골(2리)·상현(3리)·장계동(4리) 등 다섯 마을이다. 1914년 이전부터 있었던 마을은 밤뒤·불정·없어진 상가천뿐이다.
율북1리 ‘밤뒤’는 옛 율북면소재지다. 조선시대에는 양성현 율북면이었다가, 갑오개혁과 1896년 13도제가 실시되면서 수원군 수북면이 됐다. 1914년 청북면에 통합됐다. 일제강점기에는 120여 호였고, 지금은 50여 호 150여 명이 거주한다. 예로부터 김씨·이씨·박씨가 대성大姓이다. 밤뒤의 다른 이름은 맹골이다. 마을 입구 도정공장에서 생산되는 쌀의 이름도 ‘맹골쌀’이다.
율북2리는 ‘안골’이다. 안골은 안말·내촌으로도 불린다. 주민들은 안골이 율북리의 본마을이었다고 했다. 호戶는 20여 호로 작지만 아늑하고 포실하다. 해방 전까지만 해도 밤뒤와 같은 마을이었다. 해방이 되면서 분동됐는데 아직도 마을끼리 우애가 돈독하다.
율북3리·4리는 ‘장계동’과 ‘상현’이다. 두 마을은 30호 내외로 상가천(윗가재)에서 집단 이주한 마을이다. 상현이 각성바지인데 비해 장계동은 경주정씨가 많다. 집단 이주 전 상현에는 서너 집이 있었지만 장계동에는 마을이 없었다. 1920년 경 매년 계속되는 수해를 견디지 못한 하가천 주민들이 이곳으로 이주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상현은 자연지명으로 뽕나무쟁이(고개)라고도 부른다. 뽕나무쟁이는 마을 입구에 뽕나무 정자가 있어서 유래됐으며 뽕나무 상桑 자를 써서 상현이라고 했다. 이 마을은 구개들이 경작지다. 구개들은 1950년대만 해도 수해와 염해가 빈번했던 곳이다.
율북5리 ‘불정’은 부처골 또는 부처말이라고도 부른다. 본래 25호가 넘었지만 이농으로 현재는 15호밖에 안 된다. 불정이라는 지명에는 두 개의 전설이 전해온다. 옛날 어느 풍수 쟁이가 마을에 절을 짓고 우물을 파면 복덕이 있을 것이라고 말하자 주민들이 합심해 실천 했다는 설과, 신라 때 어느 스님이 길을 가다가 이곳의 물을 마시고 건강을 회복하면서 명당을 점지해준 후 마을이 형성됐다는 설이다.
밤뒤는 농업이 주산업이다. 경작지는 본래 구릉과 계곡을 중심으로 형성되었으나 진위천과 관리천 변을 간척하면서 확대됐다. 일제강점기에는 율북리강습소를 설립해 근대교육을 주도했다. 율북리 강습소는 해방 후 어연초등학교로 발전했다.
주석
83) 안춘배(75세), 정상호(61세), 이태식(77세), 박찬희(84세), 김귀배(67세), 2006년 2월 율북1리 경로당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