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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 어소리魚沼里86)
조선후기 수원군 토진면 지역이었고 1914년 어소리·고좌리 일부·서신리면 구설창리·석우리를 통합해 진위군 청북면 어소리가 됐다. 어소라는 지명은 예전에 마을 어귀에 웅덩이(소)가 있어 유래됐다.
어소리의 자연마을은 으시(1리)·구억말(2리)·구설창(3리)이다. 으시와 구억말은 경주김씨의 동족마을이다. 입향 시기는 조선 중기로 두 마을 모두 16대 약 500여 년을 살아왔다. 성씨는 같지만 파조는 각기 달라 으시는 판의 공파이고 구억말은 판윤공파다. 구억말은 금부도사를 지낸 입향조 김영이 낙향하면서 마을을 이루고 으시는 선조들이 벼슬살이를 하다가 낙향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으시’는 ‘어소’의 사투리다. 우리말로 풀이하면 ‘물고기 웅덩이’로 마을 앞 관리천 변에 물고기가 우글거릴 정도의 웅덩이가 있어 유래됐다. 웅덩이는 가뭄과 싸웠던 흔적이다. 마을 앞 어소리들은 만성적인 수해도 있었지만 모내기철에는 감당할 수 없는 가뭄도 있었다. 가뭄이 들면 농민들은 필사적으로 관리천에 매달렸다. 관리천에는 수많은 웅덩이가 생겼다. 웅덩이에 물이 고이면 바가지로 퍼 올려 모내기를 했다. 빈 웅덩이에 한차례 냇물이 휩쓸고 지나가면 물고기가 우글거렸다. ‘어못’ 즉, ‘어소’가 형성된 것이다.
‘구억말’은 ‘구석말’에서 온 지명이다. 평택에도 현덕면과 서탄면에 같은 지명이 있고 두 마을 모두 구석진 곳에 위치했다. 어소3리 설창은 조선시대 수원부(군)의 조창이 있던 마을이다. 지도에는 ‘구설창’으로 기록됐다. 설창은 처음엔 어소리에 존재하다가 나중에 용성리 설창마을로 옮겨간 것으로 보인다. 설창 터는 한산1리 알봉산 서쪽 끄트머리 ‘창터’였을 것으로 보인다.
| 한산리와 어소리의 갈림길에 위치하였던 돌모루주막(2005) |
주석
86) 정구학(65세), 김진두(83세), 2005년 1월 어소리 돌모루주막에서 인터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