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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 방축리防築里
수원군 오타면 지역이었다. 1914년 오타면의 효당리·삽교리·울성리 일부·성남면 소시동·고두면 효학리를 통합해 방축리라 하고 진위군에 편입시켰다. 효당리·삽교리·소시동은 폐동廢洞됐고, 기존의 방죽안 마을과 효학동 외에 한국전쟁 뒤 방축3리 유신동과, 1970년대 새마을사업 때 방축4리 새동네가 조성돼 현재는 4개의 자연마을이 있다. 방축리는 태평산과 봉미산을 중심으로 구릉이 발달했고 효학동 일대에는 평야가 발달했다.
방축1리는 ‘새악들’, ‘색돌’, ‘효학동’으로 부른다. 번개들과 궁논들 일대가 간척되는 과정에서 진위천 주변에 형성된 마을이다. 하천의 범람이 심해 약 300년 전후 지금의 위치로 옮겨졌다. 30여 호였지만 국도 38호선 주변으로 상가와 공동주택들이 들어서면서 인구가 급증하는 추세다. 대부분은 농업에 종사한다.
방축2리는 ‘방죽안’ 또는 ‘방축防築’이다. 방축리라는 지명도 방죽안에서 유래됐다. 80호가 넘는 큰 마을이다. 김해김씨와 상주황씨가 많다. 방축2리 남서쪽의 소시랑골도 진주 소씨들이 모여 살던 마을이다. 효덕초등학교 남쪽의 활딱지는 활터가 있던 곳으로 마을이 있었으나 국도 38호선이 확장되면서 폐동됐다.
방축3리는 ‘유신동’이다. 유신동은 한국전쟁 직후 소시랑골 옆에 피란민정착촌이 건설되면서 마을이 생겼다. 1970년대 유신체제 하에서 고덕면장이 10월 유신의 정신을 이어받자는 취지에서 유신동으로 바꾸었다. 60호 가량 되며 농업인구가 60%, 회사원이거나 자영업자가 나머지를 차지한다.
방축4리는 ‘새동네’ 또는 ‘지성동’으로도 불린다. 새동네는 1979년 국도 38호선이 확장되면서 폐동된 활딱지, 건궁리 일부 주민들 23호가 집단 이주하면서 형성됐다. 마을이 조성된 후 새마을사업의 모범사례로 선정돼 ‘경제동향모범마을’에 지정되기도 했다. 2007년경에는 45호 정도였지만 마을 앞쪽으로 전원주택단지가 조성돼 지금은 더 늘어났다. 농업에 종사하던 초기 정착민들은 많이 떠났고 현재는 회사원이나 자영업을 하는 주민들이 대부분이다.
| 방축리의 기원인 된 방축2리 방죽말(2007)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