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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 율포리栗浦里
조선시대 양성현 소고니면과 진위현 고두면 지역이었다가 1895년 행정구역 개편으로 진위군에 편입됐고 1914년 진위군 고덕면이 됐다. 율포栗浦라는 지명은 율포2리의 자연지명인 ‘밤개울’에서 유래됐다. 자연마을은 근대 이전만 해도 방죽말과 밤개울 두 마을뿐이었지만 해방 후 이화동(율포3리)이새로 형성됐다.
율포1리의 자연지명은 ‘방죽말’이다. 약 40호 내외이며 여러 성씨가 섞여있다. 방죽말에는 구방죽·윗방죽·소새비방죽이 있 었다. 구방죽은 넓이가 3천 평에 뚝 길이만 3백 미터가 넘었지만 1905년 경부선철도 건설로 터트려버렸다. 윗방죽은 구방죽 위에 다시 쌓은 것이다. 행정구역상으로 여염리에 있는 소새비방죽은 일제 말 소새비들을 개간하면서 축조했다.
율포2리의 자연지명은 ‘밤개울’이다. 조선 후기까지만 해도 마을주변에는 밤나무가 많았고 서정천에는 나루와 포구가 발달했다. 전체 130호가 넘었으며 300여 년 전 은진송씨가 정착한 뒤 경주최씨·남원양씨·순흥안씨·밀양박씨가 차례로 정착하면서 마을규모가 확대됐다. 농업인구가 대부분이지만 1970∼80년대 이후 축산업 하는 사람도 늘었다.
율포3리는 강씨네 집 한 채만 있어서 ‘강촌姜村’이라고 불렀다. 외지인들이 모여들고 배 과수농업이 발달하자 1960년 이화동梨花洞으로 바꿨다. 본래 율포 2리에 속했다가 1979년 독립했다.
| 바닷물이 들어 왔던 포구마을 율포2리 밤개울(2011)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