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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 여염리余染里67)
조선후기 진위현 고두면 지역이다. 1914년 진위군 고덕면이 됐다. 구릉이 발달해 논농사와 밭농사가 발달했으며 고구마와 채소가 많이 생산됐다. 자연마을은 해방 전만해도 성두(성머리)와 임주(임줄)뿐이었지만 한국전쟁 뒤에는 아사리벌이 새로 생겼다.
여염1리의 자연지명은 방축리성의 윗머리에 위치해 성머리城頭다. 약 50호이며 성씨姓氏의 분포는 다양하다. 마을이 개척된 시기는 대략 400년 내외로 여겨진다. 경주김씨가 개척했고 나중에 곡부공씨와 하음봉씨가 입향했다. 지형적으로 산 능선에 위치해 밭농사의 비중이 높았고, 농업용수가 부족해 ‘녹두밭 윗머리’라고 불릴 만큼 토지가 척박했다. 1974년 아산만방조제 준 공 후 안정적인 농업용수 공급과 고구마줄기판매 등 특용작물 재배로 소득이 높아졌다. 2013년 6월 현재 삼성전자 평택이주단지 조성으로 폐동됐고, 주민들은 각 지역으로 흩어졌다.
여염2리의 자연지명은 ‘임주’ 또는 ‘일줄’이라고도 한다. 1960∼70년대만 해도 35호였다. 김해김씨가 대성大姓이고 다른 성씨들도 많다. 임주는 논농사 비중이 높으며 회사원도 많았다. 마을 안에는 이괄의 전설이 전해오는 옻우물이 있었고, 동제洞祭나 정제井祭 또는 산신제가 발달한 것이 특징이다. 임주마을도 2013년 6월 현재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폐 동됐다.
여염3리의 자연지명은 ‘아사리벌’이다. 아사리벌은 가장 척박하고 사람살기 어려운 지역이었다. 한국전쟁 이전에는 서너 집만 거주하다가 피란민 5호가 정착하면서 마을이 형성됐다. 전체 40호 가까이 되지만 실제 거주자는 20호 내외다. 본래 여염2리와 같은 마을이었다가 1990년대 초에 분동됐다. 농업과 축산업이 발달했다.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폐동되기 전의 여염1리 성두(2008) |
| 삼성전자 평택사업장 건설로 폐동되기 전의 여염2리 임주마을(2007) |
주석
67) 공석영(75세), 2007년 성두마을 경로당에서 인터뷰